<Table 5>의 작품들
<안녕이라 하기 전에> 기획 의도
Table 5는 인문학과 스토리텔링, 놀이 경험을 바탕으로 서사물을 통한 여러 집단 간의 소통과 연대 방안을 실험하고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Table 5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기존 창작물의 여성 재현을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한편, 여성을 ‘여성’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탐색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를 창작과 연구 활동에 실천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Table 5가 TRPG <안녕이라 하기 전에>를 기획하며 마주한 구체적인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까? 특히, 우리는 가족 내 동성 구성원인 엄마와 딸의 관계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의 연장선에서 두 번째 궁금증이 이어졌습니다. 엄마와 딸이 자신의 실제 경험을 넘어, 잠재적인 관계와 역할까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 경험의 실험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족 내 여성’의 역할 수행이라니, 진부한 주제일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의 족쇄를 끊고 나아가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이 미래 지향적 시대정신에 더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형의 집>의 노라처럼 여성이 자신을 옭아매던 가족을 벗어나는 결말만큼이나, 그녀의 선택이 어떤 국면을 거쳐 진행되었는지 드러내는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스스로 캐릭터가 되어 생각과 행동을 직접 선택하게 하는 상호작용적, 참여적인 서사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엄마와 딸은 가장 가까운 관계를 요구받지만, 성 역할을 상이하게 이해하는 경우도 많고 이로 인해 깊은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다양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이해 없이, 전형성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친밀한 사이일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그 영향력은 때때로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이 관계는 여성성에 대한 고정 관념이 투사되어 있기도 하죠.
<안녕이라 하기 전에>는 죽음을 앞둔 엄마와 곁을 지키는 딸 둘 간의 과거 중요한 사건들을 떠올리며, 플레이어들이 해당 기억들을 즉흥적으로 연기해 보는 게임입니다. 그 기억들은 플레이어들이 연기할 때마다 새롭게 고안되며, 플레이어들의 실제 경험이나 학습된 이미지가 투사되거나 우발적 연기로 창작되기도 합니다. 이 특성은 TRPG 장르 공통의 문법을 통해 작동하는 것으로 <안녕이라 하기 전에>가 TRPG라는 형식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안녕이라 하기 전에>의 플레이 경험과 서사 구조를 설계하면서 여성이라는 범주와 모녀 관계를 한정하거나 고정하는 대신, 예측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관계를 실험하는데 보다 용이한 창발 서사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엄마’ 혹은 ‘딸’로 호명되는 사람들은 그에 부합하는 역할 수행을 요구받고, 그것을 수용하거나 저항하게 됩니다. ‘엄마’와 ‘딸’로 호명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젠더를 경험할까요. 가족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안녕이라 하기 전에>를 통해서 엄마와 딸 사이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 보려 했습니다.
<안녕이라 하기 전에>는 Table 5의 첫 작품입니다. 콘텐츠를 통한 우리의 실험을 통해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자유롭고 다양하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상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0. 5. 10
Table 5
권보연, 김은정, 손진원, 한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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