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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어블 Aug 01. 2020

B사감과 범녜

현진건과 김명순 소설로 살펴본 1920년대 여성, 여성 캐릭터


7월 18일 <Table5> 작업 일기


<Table5>의 오늘 작업은 1920년대 식민지 시대 한국 문학의 한 시절을 고유한 관점과 시선으로 채워낸 현진건과 김명순이라는 두 작가의 작품을 읽고, 두 작가가 묘사하고 창작한 동시대 여성 캐릭터를 비교, 토론하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Table5> 창작 작업에 있어 여성 캐릭터 비교하며 읽기는 1920년대 배경의 현진건 작품 <B사감과 러브레터>의 중심인물이자, 동시에 <The B사감: New world>의  중심인물인 “B 사감” 캐릭터의 창작 방향을 뚜렷하게 재정의하고 특히, 남성 작가인 현진건에 의해 창조된 여성 캐릭터 “B사감”을 보다 문제적으로 재인식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로서 현진건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다수의 단편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청소년 필독서로 인식되어, 한국 문학을 학습하는 시민 대중을 위한 교양 교육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해 관심이 높지 않은 시민과 청소년들조차,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B사감” 정도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진건의 묘사로 그려진 다양한 B사감, 못생겼다는 단정적 평가에 근거해 자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B 사감은 고학력 엘리트로, 신여성을 가르치는 교양인으로 등장합니다. 현진건에게 B 사감은 여성으로서 존중할만한 지성과 인격을 갖춘 대상이 아니라, 못난 외모에 콤플렉스가 많아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망을 죄악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욕망은 제어하지 못해 이중적이며, 정신병적 행동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묘사됩니다.  작품 속에서 B 사감의 외무는 노골적으로 희화되며, 그녀가 심야에 누군가를 상대로 연정을 고백하는 장면을 훔쳐보는 여학생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동정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는 결론적으로 아주 못생겼고, 대단히 이중적인 여성입니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훌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찌거나 틀어 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어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누군가의 외모를 묘사함에, 이토록 평가적이며 냉정한 표현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B 사감은 나이가 채 40도 되지 않은 독신 여성입니다. 잡티 하나 없는 백옥은 아니더라도 동양인의 얼굴에 있는 주근깨란, 서양 사람의 주근깨에 비하면 귀여운 정도였을 것입니다. 많이 배웠으나 못생기고, 본심은 이성을 욕망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런 처녀들을 억압하는 모순적이며, 이중적인 B사감은 독자들이 마음 편히 그녀를 조롱하고 희화하고, 비웃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못 배우고 못생기고 그래서 자기 욕망에 무감한 여성들보다 더욱 희롱하기 좋은 조건을 충족시킵니다. 작품의 마지막 구절에서 마치 돌아 버린 듯, 홀린 듯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연서 재연에 몰입한 B 사감을 훔쳐보면서 한 무리의 여학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한 여학생은 기막혀 황당해하고, 다른 한 명은 미친 게 틀림없다 단언하고, 마지막 학생은 불쌍하다며 고인 눈물을 씻어내죠. 현진건의 유머러스한 문체와 비밀스러운 여학교 기숙사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극 전개에, 우리도 그와 같이, 그녀들과 같이 B 사감을 조롱하며 100년의 시간을 보내온 것입니다.  



현진건과 같은 시대에 활동하며 리얼리티 높은 소설 작품들로 불꽃같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 자신, 재능 있는 여성에게 더욱 혹독했던 비운의 삶을 피하지 못한 작가 김명순의 작품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현진건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김명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녀는 작가, 소설가, 시인이며, 언론인, 영화배우, 연극배우로서 빛나는 창작 능력과 지성을 갖춘 여성이 겪어야 하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에 안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1917년, 잡지 <청춘>을 통해 단편 <의심의 소녀> 가 당선되어 데뷔했습니다.

김명순의 첫 작품 <의심의 소녀>는 <B사감과 러브레터>와 비교하면 몇 가지 대비되는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요. 첫째, 유희성이 절제된 엄숙한 문체와 태도 둘째, 권선징악의 평가적 세계관을 초월한 현실 묘사와 사실적 증언 셋째, 관념성을 극복하려는 현실성, 사실성의 충실한 재현 넷째, 억압의 시대를 벗어나려는, 벗어나야 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그것입니다.

 “평양 대동강(大同江) 동안(東岸)을 2리(二里)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란은 동리(洞里)는 그리 작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家屋)이 결코 비루(鄙陋)치도 않으며, 업(業)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 ‘범녜’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 만하게 몹시 어엽뿌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18, 9세의 소녀가 있다.

   


B사감과 달리, 범녜는 고운 용모로 인해, 평범한 동리 안에서도 관심 대상이 됩니다. 그런 그녀는 미인으로서 그녀의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또 다른 고초와 억압을 실증하는 생존자로 역할하고 있습니다.못난 외모로 인해 삶에 대한 태도와 욕망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된 B 사감과 반대로, 범녜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꽃과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선사한 인물이자, 바로 그 예쁜 모습 때문에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한 남성에게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부정당한 채,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선택하는 인물입니다.


범녜의 할아버지 황진사는 나름대로 순정파라, 상처한 이후 재혼도 하지 않고 무남독녀 외딸을 정성으로  길렀다. 그러나 첩질을 일삼는 바람둥이 남편으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될 딸의 비극을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자살한 어머니에 이어, 손녀에게 대물림 될 어두운 삶을 막아보고자 손녀의 이름을 가희에서 남의 이목을 끌지 않는 수수한 범녜로 개명하며 슬픈 운명을 피하기 위해, 무명의 동리에 숨어든 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현진건과 김명순이 살았던 시대의 여성들은, 배우면 배운 대로, 예쁘면 예쁜대로, 못나면 못난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억압과 왜곡, 부정의 삶을 살아야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RqqtRlN4BS4


현진건과 김명순의 두 작품 <B 사감과 러브레터>, <의심의 소녀>에는 서로 다른 특징과 조건을 지니고 어느 부분에서도 교점을 찾기 어려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데요. 여성 엘리트들과 더불어 도시의 신식 학교에서 개화한 삶을 살아가는 B사감, 더더욱 이름 없는 동리의 촌부가 되어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없는 듯, 죽은 듯 생을 이어가는 범녜.  두 여성 캐릭터에는 여성을 바라보는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이 존재하며, 이질적인 시선 속에서 놀랍도록 공통적인 당대 여성의 삶과 운명을 독해할 수 있습니다.

김명순은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김명순에게, 범녜에게, 그리고 B사감에게 그녀들이 진정 원했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 합니다. 그들에게, 우리에게 아직 그러한 현실이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창조한 이야기의 세계에서 그녀들에게 이를 허락하려 합니다.

<Table5>가 현진건과 김명순의 작품에서 채록한 목소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현진건과 김명순의 작품은 사뭇 다른듯하나, 큰 궤적으로는 같은 주제와 문제의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 목소리를 낸다면 돌을 맞거나, 놀림감이 될 것이다”
“네 삶을 지키는 방법은 숨거나,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너는 못생겨서, 너는 예쁘기 때문에 네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너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조롱당하거나 동정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제, <Table5>는 <The B 사감: New World>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목소리와 메시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B 사감을 중심 캐릭터로 삼을 것이지만, 그것은 범녜에게 김명순에게, 그리고 여전히 1920년대의 여성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억압과 자기 구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너는 네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야. 우리가 네 목소리를 전할 시간과 공간을 찾아낼 테니까”
“너는 누구보다 멀리 여행할 거야.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할게 ”
“너는 너 자신의 모습으로 살 수 있어. 네 어떤 모습이라도 그것은 타자가 아닌, 너를 위한 것이 될 거야.”
“너는 진정한 친구를 만날 거야.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고, 진정한 마음과 눈으로 너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친구. 그 친구가 있어서 너는 외롭지 않고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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