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간직한 비밀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집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날이 있었다. 그러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이 이 나라에 계속해서 전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항상 이렇게 시작하고는 한다. 그날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고 말이다.
금천동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흰 런닝 차림으로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금천동 할머니는 아홉 시 뉴스 이전에 방영하는 일일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안방 옆에 있는 부엌에서 1인극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의 우정, 새로운 곳으로의 모험을 다루는 만화 대신 친구의 배신과 연인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연속극을 더 많이 접했던지라 1인극은 대체로 그런 이야기로 꾸려갔다. 부엌 싱크대를 바라보고 있는 소파는 내 연극의 유일한 소품이었지만, 집도 되고 차도 되고 어쩌다가는 상대역도 될 정도로 쓰임새가 다양했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뭐라 소리를 지르건 말건, 할머니와 나에게는 오히려 극적인 것들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배경음에 불과했다.
연극이 절정에 달하며 소파에 올라선 순간, 안방 창문으로 검은 물체가 튀어 나왔다. 순식간이었다. 금천동 할아버지의 발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내 옆에 있던 괘종시계가 울렸다. 댕- 댕- 댕-. 금천동 할머니가 즐겨보는 격투기 시합의 장면처럼 종소리가 났던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종이 치기도 전에 상대편 선수가 우리 편에게 달려들었고, 할아버지는 가드를 취하지 못했다는 것.
“아이고, 유지너어- 유지너어-”
금천동 할머니가 이 ‘유진아’를 부를 때는 다양한 상황이 있다. 끝 음이 올라가며 ‘유지나아-’는 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를 때 쓰이는 것이고, 지금처럼 끝 음이 내려가며 악을 쓸 때는 위급하고 다급하고 절박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큰일이 났다.
할머니를 향해 뛰어가는 대신 이모 방(이모가 결혼하기 전까지 쓰던 방이니 이렇게 부르겠다)을 선택한 것은 학습이었다. 냉동실에서 할머니의 검은 비닐봉지를 모조리 꺼내 바닥에 내리치는 할아버지, 술 때문에 다리가 풀려 마당에 대자로 뻗어버린 할아버지, 무엇에 성질이 났는지 상을 엎는 할아버지.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안아 이모 방에 내려놓고는 서둘러 나갔다. 그럼 나는 나비들로 장식된 경대를 열고 거울 속의 나와 대화했다. 고함과 비명이 들리지 않는, 아주 먼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경대 대신 오이 전화기를 보았다. 내 키보다 높은 곳에 달린 그 전화기는 수화기 안쪽에 오이 단면처럼 숫자 버튼이 있었다. 까치발을 들어 수화기를 떨어트렸다. 그런데 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다섯 살 이전에 결정되는 것일까? 막상 수화기를 손에 쥔 순간 망설였다. 숫자 버튼을 노려 보고 있을 때, 방문이 열렸다.
경찰에게 끌려간 할아버지를 데려온 건 엄마였다. 조용해질 줄 알았건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커져 있었다. 금천동 할아버지의 주장은 이랬다. 나, 조경묵은 정의로운 사람이다. ‘정의롭다’라고 표현한 것은 앞집 개가 아침저녁으로 짖어대기에 고통받는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평생 건달로 살아온 앞집 놈에게 개를 치우라고 ‘건의’를 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건의는 주로 이런 방식이었다. 일. 앞집 개가 짖으면 다른 집 개들이 대꾸하기 전에 욕을 퍼붓는다. 이,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앞집 개가 짖으면 그 집의 대문을 힘껏 발로 찬다. 삼, 앞집 건달이 남의 집 문을 왜 발로 차냐고 화를 내면 더 큰 목소리로 화를 낸다. 정의로움에 하나 더 보태자면, 우리 할아버지는 바로 이런 점에서 공평했다. 할아버지는 약자에게도 강했지만, 강자에게도 강했다. 어느 누가 자기보다 키도 훨씬 크고 덩치도 세 배나 되는 사람에게 덤비겠는가.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은 정의롭고 공평한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래서 아들, 딸 중에 판검사가 있어야 하는데에!”
그래서 할아버지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자식 중에 권력자를 만들자. 그렇지만 또 알다시피, 세상과 마음은 언제나 불일치하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할아버지는 기어이 또 꺼이꺼이 울었다. 게다가 할아버지에게 더 분통한 일이 있었으니, 앞집 건달 할아버지의 아들이 경찰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수상하다고 했다. 아니, 어떻게 이 동네에서 싸움이 날 줄 알고 경찰이 그렇게 빨리 출동해? 그러게 말야. 이건 미영 아부지 말이 맞아. 할아버지는 앞집 건달 놈이 아들에게 미리 연락을 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반격할 때를 맞춰 경찰이 들이닥치게 만든 것이다, 맞은 건 나인데 벌금을 내게 하는 것이 수상쩍다며 할아버지만의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경찰이 건달의 말을 따른다고 믿었다.
결국 우리 집에 경찰과 엄마를 부른 요술 전화기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해봤자 사람들은 이미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더 눈을 반짝였으니까. 덕분에 사람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오이 전화기는 금천동 집이 사라지기 전까지 오래도록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