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부끄럽게 해요> 1. 클래식 기차

by 이소현

뮌헨의 11월은 추웠다. 아침 중앙역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플랫폼에는 역무원과 나, 그리고 비니를 쓴 여성뿐이었다. 기차는 도착 예정 시간에서 2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벤치에서 일어나 괜히 어슬렁거렸다. 스피커로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역무원이 내게 다가와 표를 확인하더니 두 손을 펼쳐서 여기서 기다리면 될 것이라 알려준다.

기차가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머뭇거렸다. 날렵하고 세련된 옆 기차들과 달리 검고 네모난 모양의 클래식 기차가 도착했기 때문에. 박물관에나 전시될 기차, 타도 되는 걸까. 역무원과 눈이 마주치고 ‘이게 맞는 기차입니까?’라는 의미가 전해지게끔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그가 엄지를 척 올렸다. 흡.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캐리어를 힘껏 들어 올라탔다.


불안해하지 마. 일단 하면 방법이 있어.

호텔을 나오기 전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수십 번은 했다. 기차가 9시 5분인 것을 알면서도 수시로 표를 확인하고 시계를 봤다. 그때마다 주원의 저 말이 맴돌았다. 나도 안다. 뇌는 무슨 말인지 알아도 심장, 위, 간, 십이지장, 소장 모든 장기가 외치는 거다. 곧 불행이 시작될 거야. 이대로 순탄하도록 놔둘 거 같니. 억울한 일을 당하겠지. 분명히 챙겼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는 빠트렸을걸. 폭주하는 날에는 열이 펄펄 끓고 위경련으로 몸져누웠다. 그럼 주원은 내 손을 잡고 ‘괜찮아’를 주문처럼 외웠다.

“괜찮지 않아. 너는 실패한 적이 없어서 이런 마음을 몰라.”

그의 연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 성공과 실패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클래식 기차에는 방이 있었다. 마법 학교로 떠나는 그 영화 속 장면처럼. 복도를 걸으며 살핀 결과 빈방은 없었다. 적어도 한 명은 타 있었고, 할 수 없이 중년 여성이 있는 방을 선택했다.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앉은 모습을 보니 조용하게 두 시간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캐리어를 기차 안쪽 작은 탁자 아래에 두고 배낭을 의자 구석에 놓은 뒤 목도리를 풀었다. 푹신할 줄 알았던 의자는 딱딱했고, 무자비하게 직각으로 꺾여 있었다. 이 나라의 옛날 사람들은 다 선비이고 신사였나. 이런 식으로 꼿꼿하게 앉아 가다가는 엉덩이에 쥐가 날 수도 있겠다 싶어 거만한 자세가 되었다. 그 바람에 마주 앉은 여성의 무릎과 내 무릎이 부딪혔다. 다리도 긴 사람들이 의자랑 의자 사이는 왜 이렇게 좁게 만드는 건지. 쏘리, 쏘리.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얼굴을 마주한 순간 흠칫했다. 오른쪽 눈썹 아래의 톡 튀어나온 점과 웃을 때 돋보이는 광대뼈, 약간 돌출된 턱. 하루를 꼬박 걸려 날아와야 하는 이 땅에서 영화배우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