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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충영 Jan 02. 2024

[철없는 아저씨의 배우 도전기 (3)]

배우가 되고 싶은, 은퇴한 정부장의 실시간 르포르타주

초등학교 시절 나는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명화를 보면 늘 마음이 설레었다. 아버지가 어느 날 사 오신 액자의 풍경화에 흠뻑 빠져 친구와 모방화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흙수저였고, 엄마는 돈이 많이 드는 화가라는 직업을 싫어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내 꿈을 들이밀고 펼치기엔 너무 나약했고, 결국 안정된 직장을 위한 무난한 전공인 공과대학으로 진학했다.


전 직장을 퇴직하고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워크넷에서 직업 적성 검사를 한번 해봤다. 결과는 나의 예술가적 기질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관리/과제 지향과 자선/사람 지향은 아마도 오랜 회사 생활을 통해 배양된 특성이리라. 나는 뭔가 새로운 걸 만들고, 아이디어를 내고,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나를 25년간 직장이라는 울타리에 가둬 놓았었다. 이 얼마나 몹쓸 짓이었던가.


초등학교 때, 나를 흥분시킨 또 하나의 교육은 토론 수업이었다. '산이 좋은가? 바다가 좋은가?' '해가 좋은가? 달이 좋은가?' 같은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두 그룹으로 나눠서 서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늘 떠들어 댔던 것 같다. 치열한 논쟁은 나를 흥분시켰고, 상대를 논리로 승복시켰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살면서 나는 그런 논쟁을 벌인적이 없다. 먹고사는데 논쟁은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 익숙해졌고 남들을 따라 할 때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가 10년 전부터 꾸준한 독서를 통해, 유튜브 강연을 들으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내 생각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 생각을 하나씩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의 네이버 블로그이고 브런치 스토리이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글'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무대공포증으로 떨면서도 무대 스릴감을 즐긴다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야심만만한 친구 성욱이가 어린이 TV프로그램 '퀴즈로 배웁시다'에 같이 나가자고 했다. "TV에 출연하자고? 헉!" "너 공부 잘하잖아. 나 순발력 있고. 우리 우승할 수 있어" "나 떨려서 한 문제도 못 맞힐 거 같은데..." 결국 성욱이 꾐에 빠져 녹화하러 KBS부산 방송국으로 갔다. 'TV쇼 진품명품' 사회자로 나중에 유명해진 왕종근 아나운서가 사회를 봤다. TV에서만 보다가 직접 보니 마치 4D영화를 보는 것처럼 신기했다. 방송국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미친 듯 뛰기 시작한 내 심장은 녹화 시간이 되자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져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태양처럼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 내 두 눈은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의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 것은 내 눈 1M 앞에 보인 왕종근 아저씨의 얼굴에 한여름 장맛비처럼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이었다.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뜨거웠던 것이다. '방송도 노가다구나... ' 하는 생각이 황당하게도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침착하게 문제를 잘 풀어 결국 3승을 했다. 우승 상품은 '롤라 스케이트'였다. 집에서 TV에 나오는 나를 보자 신기했다. 내가 출연하는 방송 중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TV에 나오는 그 사람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은 유치한 생각이 났다. 나는 그때 미디어에 자신을 드러낼 때의 흥분과 환희가 잊히지 않는다. 


나의 이 노출증(?)이 또 도진 것은 군 목무시절 유명한 TV프로그램 '우정의 무대'였다. "뒤의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라는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의 멘트에 나는 뭔가에 홀린 듯 무대로 튀어 올라갔다. 왜 올라왔느냐고 한 사람씩 묻는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지다가 드디어 마이크가 나에게 머리를 들이댔다. 나의 대답은 "뒤의 어머니는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럼 왜 올라왔어요?" "TV에 나오고 싶어서 올라왔습니다" 참 궁색하고 센스 없는 답변이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순발력과 임기응변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순발력과 센스를 갖춘 아내로부터 늘 지적당하고 혼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순발력을 길러주는 교육기관은 내가 알기론 없다. 뽀빠이 아저씨가 갑자기 돌발 질문을 한다. "만약 TV에 출연한다면 무슨 연기를 하고 싶어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나의 대답은... 아뿔싸... 최악이었다. "베드신을 하고 싶습니다!!!" 이건 뭐 웃기지도 않고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싸해짐)다. 뽀빠이의 얼굴에 당황과 실망이 섞인 표정이 얼핏 비치더니 바로 옆 장병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휴가 나와서 엄마에게 부탁했던 녹화 테이프를 돌려봤더니, 내 인터뷰는 통편집되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내 얼굴은 TV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디오에 천천히 영상을 탐색하는 '조그 셔틀'기능으로 몇 번을 검색하다가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내 얼굴을 비추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우리 아들 TV에 나왔다!" 부끄러움 반 자부심 반이 섞인 그 에피소드는 희미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관종 본색은 이 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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