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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Aug 31. 2023

날 낳아준 건 부모님이었지만 날 알아준 건 그였다!

뿌리와 날개의 국제커플 연대기/ 국제연애 하편

뿌리와 날개의 국제 연애, 하편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 친구가 집 벨을 눌렀고, 제가 좋아하는 훠궈를 사가지고 왔더라고요. 배가 고파서 일단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색하면서도 불편한 대화가 오고 가죠.


그런데, 이 사건의 전말을 알리지 않고서는 그 어젯밤의 상황이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이 친구가 싫어서 일부러 바람 맞힌 게 아니라면 왜 같이 놀러 갔다가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이 친구가 끝까지 다 듣더니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독일에서 와서 잘 안대요. 무슬림들이 어떤 놈들인지. 여자를 우습게 알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저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원한다면 자기가 자기 독일 친구들이랑 저를 지켜주겠대요.


그러면서 저를 좋아한다고 그 자리에서 대놓고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좀 내면이 복잡했습니다.








일단 그 당시 제 상황을 좀 보자면 저는 청소년기 때부터 시작된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서 가정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 채 성인이 된 상태였어요. 또 20대 초반에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그게 상당히 큰 일이었고 저한테 트라우마로 남게 됐던 건데, 그때는 그걸 몰랐죠. 그래서 뭐 적절한 치료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로 그냥 심적으로 불안하고 나약한, 의존적인 제 모습이 저의 원래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살게 되는 겁니다.


그게 어떤 일이었길래 그 당시에 그렇게까지 힘들었었는지에 대해서 여러분께 자세히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드러내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살다 보면 또 언젠가 때가 오겠죠?


아무튼, 그래서 중고등학교부터 대학을 다니던 그때까지 저는 내적으로 굉장히 위축되어 있고, 삶의 의욕도 별로 없었습니다. 태어났으니까 남들 사는 거 흉내 내면서 그냥 어찌어찌 떠밀려 살고 있었지, 미래에 대한 희망도, 인생의 꿈도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싸우시고 집이 지옥같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이다음에 결혼하면 저렇게 싸우지 말고, 항상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살아야지, 그래서 나는 갖지 못했지만,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안정적인 가정환경을 만들어줘야지 하는 다짐 하나로 그 불화를 견디며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20대 초반에 겪었던 일들로 인해서 심리적으로 더 많이 불안한 상태가 됐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결혼이 거의 제 인생의 종착역이 되어버립니다. 다른 친구들은 편입이네, 스펙이네, 인턴쉽이네 하면서 너무너무 열심히 사는데 저는 그런 거 다 필요 없이 그냥 한 사람에게 정착해서 오래오래 조용히,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20대 초반이었던 제가 그 나이에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이 결혼이 가능한 남자들이겠습니까? 그러니까 맨날 연애하다 헤어지고, 연애하다 헤어지고. 안 그래도 그런 모든 일에 좀 지쳐있다가 중국에 와서 좀 즐겁게 지내고 있는데 한 때 마음을 열었던 친구한테 또 이런 해코지를 당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너무너무 지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두 달 뒤에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캐나다로 워홀을 떠나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두 달 만나자고 외국 사람과 국제연애를 한다는 게 참 부질없더라고요. 좋은 사람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 친구가 뭐 제 맘에 쏙 드는 남자도 아니었고.


그래서 시작 전부터 이미 이별이라는 한계가 보이는 이런 연애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 당시에 이미 뜨거운 사랑보다는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안정적인 관계를 원했기 때문에 결혼할 사람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거절을 하면서 그렇게 얘기했어요.


‘미안한데, 나는 너랑 사귈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결혼이 하고 싶지 이렇게 외국 사람이랑 한 두 달 만나다 어영부영 헤어지고 그런 거 관심 없다. 나 곧 캐나다 가야 돼서 영어공부도 해야 된다’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얘가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러는 거예요.



You are the right one.



저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찾던, 꿈에 그리던 아이디얼 워먼, 이상형이 저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랑 결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가볍게 만날 생각 아니고 정말 저랑 진지하게 사귀고 싶대요.


그래서 너는 나를 모르지 않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랑 결혼을 하느냐 했더니 자기는 느낄 수 있대요.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제 눈을 한 번도 안 피하고 저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제 마음이 이 말을 믿어도 될까 하는 의심이 반, 그리고 이 사람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이 딱 반인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제 인생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청소년기 내내 지속되었던 자기혐오가 성인이 되면서 극에 달했던 시기를 막 지나서 유학생활을 통해서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여전히 마음속 깊숙이 상처가 컸고, 저 자신이 너무나 싫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저랑 결혼하고 싶다잖아요. 저랑 결혼해 주겠다고 하는 남자를 지금 처음 만난 겁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처음으로 저에 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오픈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제 내면의 모든 상처를 다 털어놓게 돼요. 그 어디서도 말한 적 없었던 솔직한 저의 가정환경과, 과거의 상처와 내 부서진 마음들에 대해서요.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그 사람에게 말해야 된다고 판단했고, 그 얘기를 다 들으면 저는 그 사람이 떠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차피 외국 사람이고 잘 안돼도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니까 정말 제 내면의 모든 어두운 이야기를 다 했죠. 그런데 놀라웠던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제 손을 꼭 잡더니, 제 눈을 보면서 영어로 진지하게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너는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이자,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이렇게 잘 성장해 줘서 고맙다는 거예요. 너에게 일어났던 모든 (힘들었던) 일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며, 너는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말을 딱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면서 이 사람 말을 반드시 믿고 싶어지는 거예요. 너무너무 믿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전히 나랑 결혼하고 싶냐니까 오브 콜스 그러는 거예요. 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더 확신이 든대요. 제가 자기가 찾던 여자라는 게.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그냥 뻘밭의 썩은 조개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그 사람은 저를 너무나 소중하게 대해줬고, 제가 썩은 조개가 아니라 품에 진주를 안은 조개라는 걸 처음으로 알려줬거든요.


이제 이 결혼의 결말을 아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 끝이 참 처참했지만, 그 당시 순간만큼은 정말, 그때까지 힘겹게 지탱해 오던 제 삶의 모든 무게를 그 사람이 내 대신 다 짊어져주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살다 보면 참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럴 때, 그 어떤 강력한 순간, 서로에게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는 어떤 사건이 적어도 한두 개가 둘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그게 지탱이 되는 거거든요.


저한테는 제가 그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했던 그날 그 사람의 말이, 너의 과거는 너의 잘못이 아니고 너는 더 행복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 말이 저에게 그러했습니다.


그때까지 살면서 그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한없이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그 말이 제 삶에서 경험한 최초의 치유였고, 제 삶이 건강해지기 시작한 작은 시발점이 됐거든요. 저는 제가 드디어 정착할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5월 달 제 생일을 앞두고 그 사람이 저에게 작은 반지를 주면서 정식으로 프러포즈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은 저의 남자친구이자 보디가드가 되어서 몇 달 안 남은 중국에서의 유학생활 동안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줬고, 우리를 축복해 주는 많은 친구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어요.


<사진첨부>






그때 저는 그 학기가 끝나면 캐나다 워홀을 가야 했었고, 그 친구는 BMW였나, 포르셰였나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라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아무튼 그 둘 중 어디에서 인턴쉽을 하기도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저랑 헤어지기 싫어서 그 인턴쉽도 거절을 하고, 저를 따라 캐나다로 갑니다. 예정되어 있던 모든 일정을 다 바꾸는 거죠.


저도 그때부터는 이 사람과 함께 있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사둔 티켓으로 캐나다를 가기는 갔지만, 워홀은 관두고 이 사람이랑 여행만 하고 옵니다. 그때 몇 달간의 행복했던 기억을 붙잡고 저희는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 대학 공부를 마칩니다.


그렇게 스카이프 화상통화와 1년에 두 번 있는 방학으로 2년 간의 장거리 연애를 버티다가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넘어가면서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거죠.


이 친구가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면 자기가 입던 빨지 않은 티셔츠를 주고 갔어요. 그러면 티셔츠에서 이 사람 향기가 나잖아요. 그러면 보고 싶어서 울다가도 그거 끌어안고 자고 그랬어요.


장거리 연애를 롱디라고 하는데 롱디 2년 동안 매일같이 저한테 전화해서 자신의 일상을 빠짐없이 공유해 줬고, 늘 저를 정서적으로 케어해 줬고, 제가 너무나 힘들어할 때면 항상 독일로 넘어오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자기가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랬어요.


그때 저희가 롱디 중이라는 걸 아시는 교수님께서 너 남편 바람나면 어떡하냐고 안 불안하냐고 그러신 적이 있는데, 저는 단 한 번도 불안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람을 피울 사람이면 24시간 감시카메라를 돌려도 바람이 나지 않겠어요? 하고 되물었더니 교수님께서 그건 그렇지,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바람은 뭐 그 사람만 납니까? 저도 피울 수 있죠. 그런데 2년 롱디 동안 그런 문제로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고, 그래서 독일로 갈 때도 걱정이나 두려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사람만 있으면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놓아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거고. 정서적 유대감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저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이 사람 입장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뭐 이 사람도 그 당시에는 롱디 하면서 저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노력을 했겠지만, 그게 저한테 참 좋은 영향을 줬어요. 청소년기 때 비워진 정서적 공백이 뒤늦게나마 메꿔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든든했고, 그 덕분에 힘들었던 대학생활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이었고, 저는 그것이 이른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국에 무슨 기반이 있었더라면 버리고 가기 아쉬웠을 텐데 저는 그런 것도 없으니까 독일에 가서 결혼하고 살면서 천천히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독일어는 뭐 대학 마칠 때까지 교양 강좌며, 종로 어학원 주말반이며 다니면서 부지런히 배워뒀습니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결혼생활이 시작되는 거죠.


다음 영상은 국제연애 상, 하편에 이은 국제연애 번외 편입니다. 10년 전 취직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던 저는 결혼을 선택해서 유럽으로 넘어옵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에 저는 또다시 경제적 자립과 가정을 꾸리는 일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죠.


선택을 고민하시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오늘도 영상을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영상에서 봬요! 안녕!




https://youtube.com/watch?v=pbQ94c_-5wM&si=QePTYSMe0T4mrx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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