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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Nov 09. 2023

잠은 잘 자니?

나이도 먹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고장이 나서 그런지 요즘 병원에 갈 일이 많아졌다. 어느 병원에 가도 처음 듣는 말은 “잠은 잘 주무시죠?” 

어디 한 군데가 불편하면 잠을 못 자는 건 당연한 일. 그렇기에 확인차 늘 하는 매뉴얼도 같은 말 같았다.

잠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데, 잠도 소믈리에 같은 것이 있으면 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잠, 깊은 잠, 가위눌린 잠, 몽유병, 불면증, 자각몽 등 꿈에 관한 많은 어휘를 직접 경험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와, 너무 신나. 이런 꿈같은 일이!!!’ 꿈이었다.

다음 날 또… ‘이렇게 생생한데 이게 꿈이라고?’ 네, 꿈이었습니다.

다음 날 ‘또???” 응 꿈이야.

다음 날 ‘이번에도 꿈일 게 분명하니 그럼 내 맘대로 해보자!!! 하하하하하’

한 시간 뒤, ‘에이, 깼잖아. 다시 다시’ 하면서 이어서 꾸기


나중에 이것이 루시드 드림, 일명 자각몽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각몽(自覺夢, Lucid Dream)은 '꿈을 꾸는 도중에 스스로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꾸는 꿈'을 뜻한다는데, 그 해석에 딱 맞는 꿈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가능했던 게 그 시절의 나는 잠을 참 많이도 잤다. 방학 때 뭐 했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집에서 잤어’라는 말로 퉁칠 수 있었고, 잠을 자느라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 적도 많았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자고 또 잤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잠이 없다. 정확히는 잠들어도 금방 깬다. 아이를 재우고, 정확히는 아이를 재우다 먼저 잠들었다가 다시 몇 시간 뒤에 깨서 내 할 일을 한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바로 다시 잠들어야 건강한 수면을 유지할 수 있다는데 눈이 번쩍 떠지기 때문에 다시 눈감기가 쉽지 않다. 그럼 그 시간에 뭘 하느냐 하면 평소 못 보던 티브이도 보고 책도 읽고 비즈 꿰기도 한다. 운동도 하면 좋겠는데 공동주택에 사느라 그건 어렵고 어둠 가득한 집 안의 작은 방에서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몇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 시간과 자연을 바꿔먹기 한 것처럼 보이지만 달달한 불량식품처럼 다음날 조금 피곤해져도 그 달콤한 여유를 놓칠 수가 없다. 그래도 출근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자볼까 누우면 복도에서 척! 척! 하고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배송이 시작된 것이다. 척! 척! 소리와 함께 복도의 불빛이 몇 번씩 깜빡 거리는 것을 보며 이 시간에도 일하는 여러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 짧은 잠에 든다. 누군가가 깊이 잠든 사이 누군가는 책을 읽고 또 누군가는 일을 한다. 겹겹이 얽혀있는 서로의 시간이라는 거미줄을 통과하듯 누군가는 하루를 이미 시작했고 나는 시작하는 중이었으며, 또 누군가는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깨있고 누군가는 잠든 바쁘지만 고요한 이 밤. 누군가는 이 밤 안에서 편안히 잠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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