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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Jan 04. 2024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책이라는 세계

그림책 만들기 트레이닝(문학과지성사)


“엄마, 책은 어떻게 만들어?” 다섯 살 딸이 쉬고 있는 내게 물었다. 무방비로 코어 질문을 받은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어~ 그러니까. 일단 써. 그리고 접어. 아, 아니다. 일단 종이를 반으로 접어 그리고 순서를 정해서 그 위에 써. 아, 아니다. 이게 아닌데” 뭔가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물론 나의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책이라는 걸 만들려면 원고가 있어야 하고 그 '원고'를 가지고 '편집, 디자'인을 해야 된다. 또는 이미 디자인된 구성에 맞춰 글을 쓰기도 하고, 비록 한 번 접은 총 4페이지의 종이라도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책으로 분류되기도 하니 설명 자체는 맞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른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는 없는 걸까.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어른이 책을 읽을 때의 경험은 어린이와 같지 않다. 어린이의 독서 경험이 축적되어 어른의 독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린이의 독서는 독서 그 자체가 아니라 독서의 경험과 책의 문법을 배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어른이 책을 잡고 ‘준비~ 땅!’하고 본론으로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좀 더 친절하게 독서의 길을 인도하는 세심한 편집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책 편집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들기는 하지만 어린이책은 거의 만들지 않았던 나는 또 모르는 세상이었다. 이는 내가 어린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어린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느끼고 보이게 된 것이다. 일단 궁금했던 것 중에 하나는 ‘어린이책은 왜 거의 다 양장, 그러니까 단단한 커버를 갖고 있는가’였다. 어린이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단가, 가격 책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단순히. 그렇지만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어린이책은 반드시 단단해야 한다. 아니면 사자마자 바로 표지가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서리는 왜 다 뾰족한가. 라운딩(둥글게) 할 수는 없는가’도 같은 이유이다.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어린이의 독서는 읽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칠하고 만지고 모든 감각을 펼치는 장이다. 고로 사자마자 모서리각은 바로 셀프 라운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심플한 면지를 추구하는 어른 책과 달리 책과 어린이책의 면지는 본문으로 들어가는 다리 역할을 해 면지 구석구석에 작은 아이콘들을 숨겨 놓기도 아예 드러내놓기도 한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있을 일을 예상해보기도 하는 좋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책 안의 구성도 심플해 보이지만 꽤나 과학적이다. 이는 <그림책 만들기 트레이닝>(하세가와 슈헤이 지음, 유문조 옮김, 문학과 지성사)에도 잘 나와 있는데 같은 내용의 책으로도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주제를 갖게 하기 때문에 지은이와 편집자의 논의를 통해 의도에 맞게 편집을 해나간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글을 읽는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읽는 시선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만약 인물이 화면에서 오른쪽 하단 구석에 있거나 왼쪽에 있더라도 그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 인물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를 은근히 드러낸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토끼 그림책에서도 책의 문법은 잘 적용돼 있었다. 읽는 우리도 잘 인지하지 못한 채



그림 자체도 마찬가지인데 똑같은 동그라미에 똑같은 검은색 눈을 하고 있더라도 어느 위치, 방향인지에 따라 화자가 어린이인지 어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물인지를 알 수 있다. 그저 단순한 동그라미 몇 개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 앞서 어린이는 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칠하고 만진다고 했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출판사는 책을 만들 때 좀 더 폭넓은 후가공의 사용으로 경험의 확장을 유도하기도 한다. 보통 어른 책의 경우 표지에나 조금 쓸법한 에폭시(겉표면 중 일부에 도톰하게 용액을 입혀 튀어나오게 해 강조하는 기법)를 본문 안에 쓴다던지, 야광 인쇄(夜光, nightglow, 물질에 빛을 쪼이면 그 물질이 빛을 흡수하고, 빛을 제거했을 때 빛을 흡수한 물질이 천천히 다시 빛을 방출하는 것-두산백과 설명) 또는 축광 인쇄(蓄光 , stored light: 빛을 축적해 두었다가-에너지를 저장- 한 번에 발산하는 형태)를 사용해 어둠을 표현하기도 한다. 책 사이에 넓은 면을 접은 다음 끼워 넣어 제본하기도 하는데 이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기존 판형보다 훨씬 넓은 면을 보여줌으로써 읽기의 공간이 확 커지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 모든 시도가 어린이에게 좀 더 이야기해 주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런 한 땀 한 땀 정성이 깃든 책을 아이와 함께 읽노라면 그 정성과 애정에 감동하며 읽게 된다. 또 이런 어린이책의 문법을 보고 어른 책에 시도할 수 있는 게 생각해보게도 한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좋은 책이 많은데 이런 구성도 좋은 자극이 된다. 


그리고 책을 만들지 않는 어른에게도 좋은 자극이 된다. 어린이책이 가진 메시지들을 살펴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게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이는 생각을 정립하는 시기이기도 하니까. 어른이 된 우리는 많이 잊고 지내지만 사실은 배운 것들 말이다. 삶에 대한 어떤 의구심이나 회의감이 들 때 어린이책을 읽는다면 어느새 책이 가진 메시지와 감각에 ‘힐링’될 수 있다. 역시 책은 어른에게도 어린이에게도 좋다. 그게 누구를 대상으로 한 책이든. 어른도 다시 어린이가 될 수 있고 어린이도 성장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은 정말 멋져! 만들면서도 읽으면서도 감동하는 요즘이다.



*

만삭을 맞았을 때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읽는 모녀를 봤다. 맛깔스럽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를 보며 혼자 좌절했었다. ‘망했다. 어떻게 저렇게 재밌게 잘 읽으시지. 어떻게 해야 될까’라고 고민했지만 그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소리 내 읽다 보니 읽어 주는 나 자신이 지치지 않으려면 내가 재밌게 읽어야 했다. 고로 소리 내 읽어주는 사람-양육자-이 요래조래 시도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책을 소리 내 읽어주는 게 두렵지 않게 됐다. 그러니 듣는 아이도 재밌게 잘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깨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낭독, 그러니까 소리 내 ‘내 목소리’를 들으며 읽는다는 건 익숙하지도 않고 처음엔 꽤나 괴로웠는데 이때 도움이 된 게 책 마지막에 많이 있는 ‘저자의 편지’나 ‘생각해 보아요’ 같은 질문 코너였다. 이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 것 같지만 사실은 읽어주는 어른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낭독이 처음인 어른들에게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도 읽어주세요.’ 하는 가이드와 같은 것.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많이 활용해 아이와 그리고 읽어주는 자신과 소통했던 것 같다. 


만약 이런 시도조차 어렵다면 각 지자체와 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북스타트’ 제도를 활용해도 좋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약 66퍼센트가 시행하고 있는 북스타트는 신청만 하면 어디서나 책꾸러미(책 2~3권과 에코백 세트)를 받을 수 있다(지자체 개수는 한정). 또 이 북스타트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주는지도 알려주기도 하고 도서관에 따라 상주하는 북스타트 선생님이 있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와 관련 기사를 참고해 보면 좋다. (북스타트 코리아: https://bookstart.org:8000)



출처: 북스타트 코리아


* 이 글의 제목은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따왔음을 미리 알립니다.

* <이 책은 왜>에 소개되는 모든 책은 100퍼센트 내돈내산, 일체의 협찬 없이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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