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기 과장~”
수국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 순간 그 둘을 cctv로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작은 김사장이라고 불렀던 그. 김씨의 쌍둥이 동생.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렇게 그녀를 부르고 손가락 하나로 까딱까딱 불러 세웠다.
“우리 할 얘기가 있지 않아요?”
둘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직원들이 들어오기까지 약 30분. 그 안에 이야기를 얼른 끝내고 싶은 둘이었다.
그는 조용히 서류 두 장을 내밀었다.
“아니, 김과장. 사직서를 안 쓰고 가면 어떻게 해.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자, 이건 사직서고 이건 ‘권고사직 위로금’이에요. 이런 거 퇴사한다고 회사에서 잘 안 챙겨주는 거 알죠? 김과장같이 나이 많은 직원한테… 회사가 이렇게 잘해줘요. 김과장 복 받은 줄 알아요.”
그가 내린 서류 두 장에는 짧게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 장에는 ‘일신 상의 이유로 퇴사합니다’. 다른 한 장의 서류에는 1번의 끝에는 ’지급한다‘, 2번부터 4번까지 계속 이어지는 ~~ 하면 안 된다, 안 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이 났다. 해고통지를 받던 그날 집으로 돌아가 누워있는데 문득 그의 친구 ’밍‘이 생각났다. 오랜 기간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였지만 어쩐지 이런 순간에도 편하게 이야기할 친구는 그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밍’은 마치 어제도 전화를 했던 마냥 전화를 받았다.
”하이~“
”오~ 언니!“
”뭐 하고 있었어?“
”아~ 개 잡을? 아니 구할 준비하고 있었어요. 알잖아요. 저 밤마다 개 구하러 가는 거“
밍은 슬기와 같은 지역에서 일하던 친구, 그래서 이전부터 자주 보던 사이였다. 밍의 전 직장은 동물보호센터. 매스컴에서도 많이 소개됐기 때문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그런 곳이었다. 동물보호센터가 대기업일리도 없고 애초에 목표 자체가 동물을 구하는 일이니 어쩌면 일이 없는 상황이 더 좋았을 테지만 일은 언제나 많았다. 구해야 될 동물은 정말 많았지만 실제로 구할 수 있는 동물은 많지 않았다. 그곳도 단체는 단체인지라 온갖 재난과도 같은 알력과 암투, 그리고 질투가 존재했던 곳이었다. 밍은 어느 날 갑자기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겼다.
”언니, 나는 개를, 동물을 구하고 싶어요. 그 애들에게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찾아주고 싶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어느 소속인지는 사실 중요하지는 않죠. 할 수만 있다면 그 일은 계속하고 싶어요.“
밍은 그렇게 말하며 낮에는 생업을, 밤에는 개를 구하러 다녔다. 지금 이 순간 왜 밍과의 대화가 생각이 나는 것일까.
김슬기, 그녀는 한참을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슴팍에서 펜 하나를 꺼냈다. 그녀가 이른바 ‘행운의 펜’이라 부르는 펜.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안 좋은 일이라도 이 펜만 쓰면 언제든 좋은 일로 바뀔 것만 같아서 붙인 이름으로 어딜 가든 그녀와 함께 하는 펜이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언제든 생길 수 있으니까.
그녀는 문서 하나, 그러니까 안 된다, 안 된다~라는 말이 가득 써 있던 문서를 두고 행운의 펜으로 크게 엑스(X) 자를 그었다.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썼다.
‘‘국수’를 입양할 수 있게 김슬기에게 양도한다’
라고 쓰고 다시 문서를 넘겼다. 작은 김사장은 문서를 받아 들고는 노발대발했다.
“아니 김과장, 이건 너무… 너무 했잖아!!! 미친 거 아니야?”
그 말을 듣은 그녀는 “이번 일에서 너무 한 게 아닌 게 어디있었죠?”라며 작은 김사장의 눈앞에서 사직서를 박박 찢었다.
순간 그들에게 주어진 30분 가까운 시간이 거의 지났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마주한 직원들이 놀란 눈을 하느라 말조차 못 걸고 있는 사이 작은 김사장은 열이 받아 씩씩대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회사를 나오며 밍에게 전화를 걸었다.
“밍, 개를 구하려면, 아니 훔치려면 어떻게 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