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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Oct 26. 2024

플레이 타임

1

작은 김사장의 콜은 퇴사자 모임에 전달이 되었다. 퇴사자들은 말했다. 우리 한 번 모여서 현피 뜰 준비를 하자! 그렇게 밍과 슬기가 모은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임을 가졌다.


모두 밍과 슬기와 한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었지만 현재 하는 일은 조금씩 달랐다. 그전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저는 탄이라고 합니다.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공무원 비슷한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늦은 나이까지 할 줄 아는 게 공부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 얼마 전 노무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슬기 선배한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건 어쩜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짝짝짝짝… 오… 노무사… 사람들이 벙찐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저는 혜라고 해요. 밍과 같은 단체에서 개를 잡으러… 아니 구출하러 다녔습니다. 지금은 회사 안에서 비공식 노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측이 인정을 안 한 단체라서 비공식입니다만. 저희끼리는 공식이라고 하고 다녀요. 하하하”


짝짝짝짝… 이어지는 박수.


그렇게 돌아가며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고 마지막, 한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슬기 씨와 함께 일했던 그냥 청소하는 할머니입니다. 저는 그냥 할머니예요.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슬기 씨를 도와주고 싶어서 왔어요. 슬기 씨는 인사를 안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청소를 하다가 힘들면 다른 자리에는 못 앉아도 슬기 씨 자리에선 편히 앉아 있었어요. 다른 자리와 다르게 그 자리만은 편히 앉을 수 있었지요. 슬기 씨는 먼저 손을 내밀어준 사람입니다. 적어도 슬기 씨가 그렇게 버릇없는 사람인 건 제가 알아요”


짝짝짝짝…

그들은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역할 분담을 하기 시작했다.


2

현재 노무사인 탄이 회사에 같이 들어가면 좋았겠지만 탄은 회사를 두려워했다. 이미 자신은 출판인도 아니고 노무사가 되어버렸지만 그 회사는 공포 그 자체라 말했다. 이에 밍이 말했다.


“그럼 내가 노무사인 척할게. 그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모르잖아.”


이렇게 밍은 노무사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르는 연극이 시작되었다. 더 쇼 머스트 고 온.


3

작은 김사장과 약속한 날이 밝아왔다. 밍과 슬기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회사를 찾아갔다. 멀리서 지켜보는데 2층에서 수국이가 밍과 슬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보였다.


둘은 생각했다.

’우리가 널 꼭 빼낼 거야‘


 4

탄은 이미 이날을 이렇게 예상했었다.


“분명 변호사를 불렀을 거예요. 그 자체가 위압감을 주니까요. 이것저것 법률 용어를 들이대면서 헷갈리게 할 건데 넘어가지 말고 제가 말한 것만 계속 요구하세요. 그럼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


탄의 예상대로 회사에 들어간 순간 변호사와 작은 김사장과 김씨 이렇게 셋이 나왔다. 김씨의 한쪽 손에는 여러 페이지가 태깅되어 있는 <출판 노동자의 목소리>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밍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김미소 노무사입니다”

‘네~ 반갑습니다’라며 서로 거짓 미소와 명함을 건넸다.


변호사가 말했다.

“좀 더 원만한 논의를 위해 녹음은 안 하는 게 어떨까요?”


밍이 말했다.

“저희는 원만한 논의를 위해서 녹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면 그쪽도 녹음을 하셔도 좋습니다.”


이에 변호사는 “하아… 그그럴까요. 그럼 저희도 녹음을… 저희가 권유를 드려보는 것이지 강요를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점 오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라 말했다.


이에 슬기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가진 패가 없구나. 하긴…’


길고 지난한 대화가 이어졌다. 슬기는 말했다.


“제가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쨌든 말로 한 싸움이지만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말로 때린 것도 폭력은 폭력이지요. 이럴 경우 때린 사람이 사과를 해야지 맞은 사람이 사과를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건 굉장히 상식적인 것이에요. 그저 사과를 원합니다. 그뿐입니다.”


이에 참다못해 말한다는 듯 김씨가 나섰다.


“아니 제가 오죽하면 그랬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인사에 집착하고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꼰대는 아닙니다. 직원들이 명절에 인사 온다는 것도 마다하고 복지에도 가장 먼저 힘쓰고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기 원래는 물통 정수기였는데, 직원들이 그 무거운 물통을 갈아 끼는 게 안쓰러워서… 그냥 정수기도 아니고 얼음 정수기로 바꾸자고 한 것도 저고, 회사에 안마의자 들여오자고 한 것도 저예요. 김슬기 과장… 저… 저… 하는 태도가… 다른 직원들에게 아주 나.쁜. 영향을 주고 있어요. 저는 그게 두려웠을 뿐입니다! 저기 저 김슬기 따라서 애들이 인사 안 하고 다니면 어떻게요? 말과 글을 다루는 출판사에서 인사는 기본예절이고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글로 쓴 사과문을 쓸 수 없.습.니.다!”


김씨가 얼굴이 새빨개지며 열변을 토했다. 이에 밍과 김씨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아니 그렇게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가 중요한 거면 노동계약서에 쓰시던지 저어기 회사 현판 옆에 ‘인사를 잘하자’라고 써놓았어야지요. 그리고… 노동계약서에 ‘개 케어’ 부분이 있습니까? 개를 회사에서 키우고 있다고 하던데요. 심지어 밤에는 방치되어 있다고 하고요”


”그게 지금 이 대화에서 무슨 상관이죠?“


”상관있죠. 개를 케어한다고 업무 외 수당이 나오나요? 개를 케어하는 것뿐 아니라, 개를 케어하느라 주말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개 주인은 대표님이 아니라 직원들 아닙니까. 사실상 개를 직접 키우는 건 직원들이니까요“


“국수는 누가 뭐래도 내 개예요! 내가 펫샵에서 돈 주고 사온 내 개!”


“그러니까요! 개를 사 왔던 데려왔던 개 주인이라면서 케어는 직원들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마름꾼들도 아니고 책을 만들러 온 사람들이 개 케어까지 왜 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케어를 못할 거면 개를 양도하세요!”


“아니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국수는 내 개예요. 내가 데려온 품종견! 내가 쟤를 데려 오려고 예약까지 걸어놓고, 돈을 얼마나 많이 쓴 줄 알아요?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드는데!”


“그니까 이제 돈 그만 쓰시고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양도해 주란 말입니다!”


이에 작은 김사장이 옳다구나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돈도 많이 들고 귀찮은데 데려간다고 할 때 그냥 줘버려요“


김씨가 동생을 째려보려 소리쳤다.


“그건 안돼! 그럼 주말 sns에 뭘 올리라는 거야!!!!!!!!”


보다 못한 변호사가 노트를 덮으며 자리를 정리했고자 시도했다.


“서로의 입장을 다 들어봤으니 이제 이쯤 하고 정리하시죠. 사과문은 김슬기 과장님도 넓은 마음으로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그러자 밍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저희가 너른 마음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일어나며 김씨를 향해 다시 말했다..


“너른 마음으로 수국이를… 아니 국수를 다른 곳에 보내는 것도 생각해 보세요”


씩씩거리는 김씨의 소리를 뒤로 하고 밍과 슬기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작은 김사장이 이 둘을 따라 나왔다.


“김 과장~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구~~ 잘 생각해 봐요.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개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사과문만 어케 좀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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