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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민 Dec 11. 2024

카톡 하는 사이

카톡!


딩동하고 정적을 울리는 알람을 울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익숙하고도 익숙한 소리지만 그는 이전과 달리 깜짝 놀랐다. 마침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고 그저 그 소리에 이전처럼 반응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 소리가 다르게 들린 건 그 앞에 틀어진 티브이 속 뉴스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듯 부자가 아니었던 그의 꿈은 ‘부자’였다. 정확히는 부자가 되는 것. 이른바 진짜 부자, 그러니까 날 때부터 돈수저를 들고 태어나는 '모태 부자' 말이다. 그러나 부자라 하기도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했던 그는 부자 ‘행세’를 하는 데 능했다. 물론 가능하다면 '행세'가 아니라 '진짜'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는 언제나 이 사실이 불만이었다. 있으려면 아싸리 화끈하게 있지 이 애매하고 애매해서 감질남이란. 아예 모르면 몰랐어도 적당히 맛만 본 이 부자의 맛, 권력의 맛은 이렇게 달콤하거늘. 나는 왜 태어날 길 이렇게 애매! 애매! 애매! 한 채로 태어났던 것일까.


그런 그가 택한 일은 인맥 쌓기였다. 물론 인맥 쌓기의 방법과 사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실히, 차분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저절로 쌓이는 게 '인맥'이고 이 ‘인맥’을 그저 좋은 사람을 알아가고 딱히 그것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런 방법은 어쩐지 그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실'이라는 단어를 그는 증오했다. 그가 자라면서 동경하고 관찰해 온 그 ‘부’를 가진 자들의 특징은 특별한 노력 없이 타인의 노력을 날로 먹고, 그로 인해 이미 차고도 넘치는 ‘부’를 무한 증식하는 것이었는데, 거기에 왜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부단한 나름의 노력을 통해 나의 ‘부’를 쌓는 것을 목표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맥이란 것을 쌓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찐부자들은 하지도 않아도 될 노오력을 한다는 것에는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남았지만 말이다.


그의 이런 억울한 기분은 나보다 못한 것들을, 그가 쌈마이라 여기는 이들을 만날 때 더 깊게 다가왔다. 요즘 말로 ’현타‘라고 할까. 고매한 나의 인품과 예술적 감각에 발끝에 발끝에도 못 따라오면서 말로는 뭐라고 씨부리는지도 모를 사람과 대화할 때는 더욱 그랬다. 특히 부잣집, 권력자 사모님들과 대화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교수님 누구의 부인, 그의 제자, 또 그의 제자인 ’사‘자 들어간 님들을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꾹꾹 눌렀다.


때론 그런 쌈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성이 나쁘지만도 않았다. 나도 그런 쌈마이를 단전에서부터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걸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시원한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어사전과는 또 다른 그 만의 정의로 ’성실‘하게 인맥을 쌓아가다 보니 높디높으신 분까지 인맥이 닿았다. 여전히 찐부자는 아니었지만 거기까지 인맥이 닿았다 하니 왠지 나의 ’급‘도 거기까지 올라간 것 같고 기분이 좋은 그였다.

특히나 쌈마이라고 욕했던 그 여자가 티브이에 나올 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 그녀와 나는 아는 사이! 자, 이제 그녀에게 안부 겸 티브이 출연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인사를 보낼 차례지!‘하며 종종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1, 2, 3…


카톡!

이 소리는 이렇게 짜릿한 것이었다!

그간의 굴욕이 보상받는 이 느낌!


카톡! 카톡! 하며 울릴 때, 권력의 소리가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나도 이제 한 자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아니라 다음에는… 혹시 나에게도…‘ 라며


그녀는 쌈마이긴 했어도 이런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명절이면 바리바리 선물을 싸서 보내왔다. 물론 절대다수의 같은 선물을 받는 한 사람일지라도. 그 명단에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일부러 받는 주소도 회사로 알려줬다. 이걸 보면 직원들이 나에게 뭐라고 찬양의 말을 보낼 것인가. 들뜬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기쁨을 주는 그녀였는데… 지금 그녀가 티브이에 나오고 있다. 그것도 매우 안 좋게.


카톡! 카톡!

읽지 않은 카톡 소리가 계속 들린다. 어쩐지 확인하기 무서워지는 그였지만 마른 목에 없는 침을 삼키며 메시지를 확인한다.


휴… 다행히 그녀가 아니다. 바로 며칠 전까지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긴 했지만… 하긴 이 와중에 카톡을 보낼 리가 없지…라며 내심 안심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연락처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봤다. 그녀의 이름을 찾아 들어가 스크롤을 쭉 내리니 빨간색으로 ’발신자 차단‘ 버튼이 보였다. 그는 과감하게 이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sns에 남긴 글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역시… 주도면밀하고 영민한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마음이 드는 그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다시 한번 스크롤을 내리며 sns를 훑어봤다. 이럴 수가.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으나 그녀가 보낸 선물 사진과 그에 대한 글이 있었다.


’사과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복숭아라 너무 반갑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 오히려 반갑지 않았던가요. 이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보다 오히려 진심이 와닿는 새로운 선물과도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새로운 만남과도 선물에 진정성을 보였습니다‘라고.


그는 고민하다 과감히 게시물을 지우기로 했다. 이로써 그의 인맥 중 한 명이 정리되었다. 아차차. 그는 카톡을 까먹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캐치했다. 그리고 마지막 정리를 하듯 그녀의 카톡 프로필로 들어가, 점 세 개 버튼을 누르고 맨 마지막에 ’친구 차단‘을 눌렀다. 어쩐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그였다. 그 순간 ’카톡!‘ 소리가 다시 울렸다. 방금 전 자신과는 다르게 여유롭게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메시지에 답을 하며 생각했다. ’역시 내 인품에 쌈마이는 애초부터 안 맞는 것이었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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