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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완벽히 눈앞에서 훔치는 방법

by 김경민

개를 훔치는 건 분명 많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훔치는 게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무엇보다 개를 안전히 데려가고 싶었던 슬기는 밍과 혜에게 도움을 청했다. 비정규직이었으나 누구보다 개란 존재를 사랑해서 늘 그들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 잡으러 다녔던 그들이었기에 의외로 계획은 쉽게 풀렸다. 그들이 이미 가진 포획틀을 비롯한 장비들을 하나씩 체크하고 동선과 계획을 짜고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논의를 했다. 개를 데려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어쨌든 주거지가 바뀌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계획은 바꿀 수가 없었다. 그저 아직은 ’국수‘인 수국이가 천천히라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작은 김사장의 적극적인 협조로 짧은 일정에도 계획은 술술 풀렸다. 퇴사자들의 연대가 무색할 정도로, 아니 사실 작은 김사장이 퇴사자 모임의 대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계획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모든 계획을 꼼꼼히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큰 김사장이 그간의 스트레스를 풀러 가고, 국수의 주거 변경일의 날이 밝았다. 작은 김사장은 형을 꼬드기며 빨리 공항으로 출발하라는 채근의 전화를 넣었다.


“아니~ 요즘 국제공항이 그렇~~~ 게 사람이 많다잖아요. 두 시간 갖고는 택도 없대요. 한 다섯 시간은 먼저 가서 기다려야 겨우 제시간에 탈 수 있다나 뭐라나. 비행기 놓치는 것보단 미리미리 가서 있어요. 가서 법카로 면세점도 좀 들리시고. 그동안 스트레스 많았잖아요.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 팍 풀고 와서 나머지 일은 정리하자고요~”


작은 김사장은 어울리지도 않는 콧소리를 적당히 섞어가며 형을 달랬다. ’면세점‘과 ’법카’라는 단어의 조응이 큰 김사장에도 나쁘게 들리지 않았던 터라 못 이기는 척 일찍 출발한 그였다. 물론 국수에 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나 없는 동안 국수 관리 잘하고~ 국수는 미모가 생명이야~ 사진빨 잘 받아야 하니까. 때때로 털도 잘 빗겨 주고 그러라고~ 그럼 갔다 올게”


좋아하지도 않는 개의 털을 빗겨주는 상상을 하니 왠지 치가 떨리는 작은 김사장이었지만 솟아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며 그러겠노라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전화를 끊자마자 슬기에게 신호를 보냈다.


띵동.

슬기의 문자로 ‘김사장 출국장으로 출발’


그 신호와도 같은 문자에 일제히 다들 한 장소로 출발하기 시작한 퇴사자 연대였다. 한 시간 반쯤 지나가 열몇 명의 퇴사자 연대가 모였다. 한때는 그들의 직장이었고 전부였던 그곳에. 만감이 교차하는 그들이었다. 사람들이 얼추 모이자 회사 안에 직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작은 김사장이 국수를 데리고 나왔다. 작은 김사장은 국수를 슬기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슬기에게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슬기는 찬찬히 문서를 읽어 보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의 고화질 핸드폰으로 문서의 사진을 찍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 한 방 찍으시죠. 증거로도 쓰게“


작은 김사장은 슬기와 국수 옆에 섰다. 그들은 함께 문서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엄지척을 들었다.


찰칵! 찰칵!

소리와 함께 두 장의 사진이 찍혔다.


한 장은 작은 김사장, 슬기, 국수가 함께 문서를 들고 웃고 있는 사진.

다른 한 장은 한껏 줌을 당겨서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문서의 사진.


문서에는 심플하게 한 줄이 쓰여 있었다.


”김슬기는 **사의 국수를 입양한다. 이는 김**(작은 김사장의 이름)의 공증으로 추진한다. 김**과 **사는 후에 이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모인 퇴사자 연대가 박수를 쳤다. 그리고 국수에 목에 걸린 이름표를 떼고 새로운 이름표를 걸어 주었다.


”김수국!!!“


이를 지켜보던 **사의 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했지만 창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그저 사진만 찍고 있었다. 물론 같은 시간 퇴사자 연대도 핸드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씩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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