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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에그

by 김경민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수국이도 변화된 일상에 적응했고 슬기 또한 그러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 좋은 날이었다. 거기에 적응한다는 일은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러웠기에 딱히 적응이랄 것도 없었다. 그렇게 그날도 하루 두 번 동네 산책을 하고 최고급을 아니어도 맛있는 사료를 먹고 함께 어깨를 내어주는 하루말이다. 시간은 그렇게 조금씩 흘러 가을의 문턱 앞에 다다랐다. 슬기는 수국이와 함께 오랜만에 밍과 혜를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


“추수감사절 계란 받아 가세요”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계란이었다. 긴 역병의 기간 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삶은 계란. 포교라는 행위에 따라오는 무엇이었지만 길었던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온 증거 같아서 슬기는 왠지 반가웠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슬기는 입 속에서 한 단어가 맴도는 걸 느꼈다. 아! 이스터 에그(Easter Egg)!


그래 맞아! 부활절에 토끼가 계란을 숨기듯 문화 콘텐츠 어딘가에 장난스레 몰래 숨겨둔 것. 뜻밖에 단어에 슬기는 어떤 일이 문득 생각나 피식하고 웃으며 다시 길을 걸었다.


*


“야, 그거 들었어?”

간부급들이 회의를 하는 화요일마다 벌어지는 풍경이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 목소리가 신나 보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보니 무언가를 하나 보여 준다.


“이거 출판 편집자 오픈 채팅방이라는데, 우리 회사도 올라와 있대. 보니까 겁내 웃겨. 하하하. 이거 읽어 줄게.


’학교인 듯 학교 아닌 학교 같은 회사~~~!!!


이곳은 학교와 비슷. 교장, 교감, 이사장, 사감, 학주도 있고 담임도 있음. 그러나 대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에 가까움. 누가 누가 더 유치한 지 대결의 장이 펼쳐짐. 무의미하고 사람 진빼는 일이 너무 많음. 게다나 내가 언제 그랬어라고 해맑은 눈으로 말하지 말기!‘


이 부분 진짜 웃기지 않아? 누가 누가 더 유치한 지 대결의 장이 펼쳐짐. ㅋㅋㅋㅋ“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이 폭소를 터트렸다. 나도 짐짓 폭소를 터뜨리는 척 웃다가


”아휴 그렇게 누가 그렇게 묘사를 잘했대? 현장감 쩌네“

라고 응수하니


”아 그러니까~ 진짜 개웃겨. 하하하하“


또다시 직원들이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웃음을 배경음악 삼아 씩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하지만 직원들에겐 따로 말하진 않았다. 그거 사실 내가 썼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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