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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May 15. 2024

김민기 선생님께 배우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그나마 내 의지의 영역과 가깝기 때문이다. 때마침  TV에서 방영된 작곡가 및 가수 김민기 선생님 관련 특집프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방송을 보는 동안 잠시도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를 숱하게 부르고도 정작 노래를 만든 김민기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면서도 어찌해서 한번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 친구 등 노래 속에는 김민기란 이름이 스며들어 있었다. 노래와는

달리 내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전설과 같은 인물이었다. 김민기는 민중가요라는 노래들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고유명사였다.  3부작 TV프로를 통해 그에 대해서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현대사에서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분명한 건 그는 출중한 예술적 감각과 능력을 지녔다는 것과 그 이상으로 겸손하고

합리적이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란 것.  부조리한 시대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눈감지 않았던 의인.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많은 걸 챙긴

“뒷것”이란 사실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신선한 충격이었다.

 TV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20대 푸릇한 학창 시절을 소환했다. 밥벌이하면서 그 시절을 반추하거나 주변동료들과 술 안주거리로 소비했던 시간은 없었다. 딱히 자랑스럽게

말할 부분이 없었으니까.


  서슬 퍼런 군부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가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에 기여한 기억은 없기에 학생운동을 한 학우들 앞에서 떳떳한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범생이

아무 생각 없이 대학생활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집에서 쉬거나 잠자는 시간 빼고 낮에는 학교에서 밤에는 야학이 있던 성당지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대학 입학 후, 학과 선배의 권유에 의해

야학에 첫발을 디뎠다. 호기심으로 우연히

한번 찾아간 곳에서 군입대시기를 제외하고

거의  3년 동 교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첨에는 공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하는 노동야학인 줄 알고 활동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학생들을 교육할만한 역량도 없었고 그럴만한 그릇도 되지 않았으니까.


  학생들은 공장 노동자, 자영업자, 주부 등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집안형편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로 대부분 검정고시를 염두하고 야학을 찾아오셨다.


 반면, 교사들은 정권과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학 재학생들이었다.


  고맙게도 성당에서 야학에 공간을 제공해

주고 일체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대학생 교사들이 매월 소정의 회비를 내고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사회에서 배움의 혜택을 받은 대학생으로

당연히 배운 걸 나누어야 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분들로부터 보고 느낀 게 더 많아  봉사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는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염두하고 야학에

오지만 모든 교과정이 검정고시를 전제로

진행된 건 아니었다. 교사들은 검정고시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며

음악시간에는 민중가요로 알려진 김민기의 노래를 부르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 공동체 문화활동 등이 커리큘럼에 포함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야학교사로 동료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며 학생들과 3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야학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며

해가 바뀌면 교사 및 학생 모집에 신경이 곤두섰고  간혹 수업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교사 및 학생들 때문에 애를 태우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이룬 건 없지만 야학이란

특수한 공간에서 고민하고 부대꼈던

순간들을 지나간 젊은 날의 한때일 뿐이라고 봉인만  해두는 건 최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 있건 없건 그것도 내가

지나온 시간의 궤적이고 역사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도 어쩌면 그 지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힘든 시기에  가슴 뭉클한 노래로

세상을 위로했던 김민기 선생님 이야기가  묻어두었던  내 젊은 날의 한때를 소환해 주었다.


 세상의 약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

예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 앞에 나서길

꺼려하는 겸손,  그가 주변에 보여준 대로 따라 하고 싶은 덕목이다.


  세상에  인간으로 나와서 이처럼

폼나게 살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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