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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Apr 20. 2024

7 일 동안의 사색

모든 고민을 삼켜버리는 절대권능, 죽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주일이나 병원 밥을 먹었다.


 환자가 되니 모처럼 몸이 대접받아서 좋기는 했다.  하루종일 누워 있어도 눈치 볼 사람

없고  되면 식사 챙겨주고 혈압체크하러

오고 이런 호사를 언제 누릴까.


 그렇다고 고민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

수술하기 전에는 수술이 잘 되어야 할 텐데 하고 수술 후에는 수술이 잘 된 건가 신경이 쓰였다.


 한쪽 눈 부위를 드레싱으로 가린 상태라 책 읽기도 편치 않았다. 팔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어서 화장실에 갈 때조차 링거 거치대를 끌고 다녀야 했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게 한 건 병원 구내 산책.

복도를 따라 일부러 긴 코스를 만들어서

걸었다. 입원실이 있는 B동 13층에서

5층으로 이동해 구름다리를 건너  A동으로

가서 다시 긴 통로로 연결된 C동으로 걸었다. C동에서는 엘리베이터로 1층으로 내려와 구내에 조성된 야외 산책로를 걷다가  다시 병실로.  30분 정도 걸리는 코스였다. 병원이라 주변에 어디든 의자들이 있어서  언제든 쉬기 좋았다. 구내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거나 병동 복도를  따라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기도 했다.


 야외 산책로에 게릴라처럼 포진해 있는 제라늄이나 튤립, 영산홍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산타워 침상 창가를 통해 병실로 들어와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왔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다. 사고 다음 날, 날이 밝기도 전에 부랴부랴 비행기 탑승시간을 좀 더 일찍 출발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조천에서 공항까지 택시로 이동후 출국 게이트를 통과했다. 공항 검사요원이 내가 건네준 신분증과 나를 번갈아보며 한참 동안 바라보았을 때는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골이 엉망이었으니까. 빨리 서울로 가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공항에서 바로 병원 응급실로 와서야 긴장의 끈이 풀어졌다. 이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될 거라 보고. 거동조차

힘들었으면 제주를 빨리 벗어나기 려웠을 것이다.      


  제주도에 가서 사고를 당해 수술까지 하게 될 줄이야.  하루만 지나면 위미와 성산포를

지나 제주 동해안 해변도로를 따라 제주시내

까지 무사히 자전거를 완주한다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는데.


 비바람을 맞으며 애월과  대정의 제주 서쪽해안과 서귀포의 경사진 도로까지

그 험한 코스를 통과하고 사고가  났으니 할 말을 잃었다. 깨어보니 응급실이고 사고가 어찌 났는지 기억조차 없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 같았다.


 머리에 심한 충격으로 뇌출혈이 있거나

눈을 다쳐서 시력에 문제라도 생겼다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아무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무엇보다도, 목숨까지 잃을 뻔한 사고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큰 사고를 당하고 보니 사고이전 고민거리들이 모두 사소하게 여겨졌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살도 좀 빼야 하는데. 건강도 잘 챙겨야 하고. 좋은 인연들과 계속 잘 지냈으면 등등. 이 모든 게 죽음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동안 브레이크 없이 페달을 밟아왔다. 멈추면 쓰러질 거라 생각하고. 잠재의식 속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숨어 있었다. 그나마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멈추는 건 죄악이었다. 이미 가속도가 붙어서 내 의지로는 멈추기 힘들었다. 그리고, 사고가 났다.     


  바람의 고장 한경에서 바람의 힘에 굴복해 자전거를 끌고 걸어갈 때 벗에게 카톡 문자가 왔다. 그만 거기서 멈추라고.


  날씨 상황에 대 내가 보낸 카톡 답장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섬뜩했다.

마치 상황을 예견이라도 거 같아서.      


  사고가 났다는 이유 때문에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할 계획이 무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일주에 성공한 십 년 전과 비교할 때 체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 건 맞지만 결코 무모함이 원인은 아니었다. 어찌 사고가 났는지 기억은 할 수 없는 게 답답할 뿐. 안전에 보다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한 건 사실이다. 사방이 어두워졌음에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운전을 했으니. 그때는 멈춰야 했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냥 이대로 세상 떠나게 할 수 없어서. 스스로 멈추지 못해서 멈추게 한 거라고. 살아나서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맙다.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생에 대해 말하자면 담대함과 두려움이 반반이다. 다시 살아났는데 두려울 게 뭐 있나 하는 담대함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두려움.  죽음 근처까지 가보았으면서 사고를 통해 아무것도 느끼는 게 없다면 남는 건 상처뿐.,  


 바꿔 버리고 싶다.

전신마취로 얼굴뼈  골절부위를 수술한다고

하니 인이 한마디 했다. 수술하는 김에 의사에게 주름도 제거하고 피부도 탱탱하게 해달라 해보라고. 수술전이라 잔뜩 긴장된 상태였는데  그말을 듣고 음을 참을

없었다.


이론상 그럴 듯 하기는 했다. 사고로

인한 수술과 미용을 위한 수술은 전혀 성격이 달라 말도 안되는 이야기.


 얼굴보다는 표정과 마음만이라도

확 바꿔 버리고 싶다. 그것만 바꿔도 앞으로 폼나게  사고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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