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요즘 책을 읽지 않는 분위기라 출판계가 침체상태라고 요란이지만 서점만 가보면 그 말이 엄살로 들린다. 표지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시선을 사로잡아 일단 집어 들면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매달 쏟아져 나온다. 문학서적만 보더라도 눈이 부실 정도다.
1월, 박연준 시인이 39권의 고전을 맛깔나게 소개한 “듣는 사람”이 뜨겁게 출판계를 달구더니2월에는 은유 작가의 “해방의 밤”, 3월에는 성수영 작가의 “명화의 탄생”과 정여울 작가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4월에는 김유태 작가의 “나쁜 책 (금서기행)” 5월 초에는 편성준 작가께서 내 책꽂이에서 당신 책꽂이로 보내고 싶은 책이란 귀여운 부제로 51권의 책을 소개한 “읽는 기쁨”이 출판되어 내 선택을 받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최근에는 자타공인 활자중독자이며 SNS에서 최고의 서평가로 통하는 김미옥 님께서 서평집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와 자신의 삶을 정리한 “살아온 이야기를 묶은 미오기전” 등 책 두 권을 동시에 내놓으셨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읽을거리가 늘어나서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박연준 시인 (“쓰는 기분”), 은유 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편성준 작가 (“부부가 놀고 있습니다”)의 글은 이미 출판된 책을 통해 글맛을 알게 돼서 이제 이름만으도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할 정도로 가까워졌다.신문사 문화부현직기자들인 성수영과 김유태 작가가 각각 그림과 책을 소재로 출판한 책들도 처음 보자마자 반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독자의 입장에서는
최고의독서환경이지만
신간을 세상에 내놓을 무명작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책들과 나란히 서점의 매대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니까.
움메 기죽어하며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 읽기를 즐기면 되지 주제넘게 무명작가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냐고? 그럴만하니까....
6월 중 세상에 신간을 낼 예정이다.
2년 6개월 전부터 틈틈이 써놓은 글들을 모아 산문집으로 출판하려고 한다. 그동안 걸어 다녔던 여행지에 대한 단상, 책과 그림,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 60편 정도와 관련 디카시 60편 정도를 섞어 하나로 묶은 작품집이다. 굳이 주제를 정하자면 일상을 즐기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책을 준비하기까지 갈등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책을 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남들이 읽어줄 만한 글이나 한번 써보자는 생각이었으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10년 치 정도 일기를 꾸준하게 써왔다거나 백일장에 나가면 꼭 상을 받았다는 내력으로 자신감 하나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어디를 다녀오거나 무언가를 하고 혹은 힘든 순간을 지나가면서 그것을 글로 표현했다. 한 달에 한두 편 이상 써 볼 생각이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고 글이 술술 나오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럴 때는 생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책을 내려고 그동안 쓴 글을 모아놓고 한편씩 다시 읽어 보았다. 그때 느낀 절망감을 어찌 표현할까. 무슨 배짱으로 책을 낼 생각을 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니 매끄럽지 못한 글이 한둘이 아니었다. 상상력이란 양념이 빠져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
메시지 혹은 주제가 보이지 않는 글,
생각이 설익어서 내용도 어설픈 글.
이런 글로 책을 낸다는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책을 내기로 작심했기에 포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주말 휴일마다 글을 붙들고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예 시작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은 처음부터 다시 쓰는 기분으로 정리했다. 재미도 없고 여운도 없는 글이 대상이었다. 퇴고 과정에서는 글마다 면접을 다시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물어서 말문이 막힌 글들은 가차 없이 다시 손 보았다. 글을 한 바구니에 담았을 때 공간을 너무 차지하거나 모가난 글은 골라냈다. 책이란 바구니에 60편 정도 되는 글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 세상에 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밖으로 한 아이가 나오는 건 축하받을 일이다. 나오기도 전에 비교 혹은 경쟁이란 말을 쓰는 건 가혹하다. 난산끝에 빛을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