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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Jun 06. 2024

산은 왜 자주 찾아가도 질리지 않을까?

설악산 서북능선을 가다 ( 한계령 휴게소 - 대승령 - 장수대 )

6월 첫날을 잠까지 설치고 열었다.


새벽 5시 집을 나와 설악산 한계령으로

향했다. 한계령에서 출발해 귀떼기청봉,

대승령, 장수대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코스를 걸었다. 정상인 대청봉 방향으로 가는

코스보다는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발에 돌덩이를 묶어놓은 듯 무거웠다. 한계령

초입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계단, 능선 위의

돌무더기 밭, 건들건들거려 위태로워

보이는 철제계단,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과 오르막의 반복,  게다가 능선 중간쯤에선

비까지 뿌려 과연 무사하게 내려갈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다.

비가 그치고 안개로 인해 주변이 흐릿할 때는

흡사 영화 쥐라기 공원 속 밀림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

순간 언제 그런 상황이 있었냐는 듯 무엇엔가 홀렸다. 지리산을 처음 올랐을 때 경험한 것처럼. 잔잔한 구름바다에 뾰족 튀어나온 섬 같은 봉우리들. 발아래 절경이 펼쳐졌다.    

  

대승령에 도착해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장수대까지는 하산 코스라서 2.7킬로쯤은 지나온 거리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또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번엔 계속 이어지는 돌계단이 문제.

비로 인해 미끄러워 잠깐의 실수로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판이었다. 계단 아래를

보며 거북이걸음으로 내려가는데 눈앞에 열린 경치는 어찌나 멋진지. 오후 5시 반경,

여덟 시간의 산행을 무탈하게 끝냈다.         


어릴때부터 산과 친했다. 지방도시의 변두리

산 아랫마을에는 번듯한 놀이터 하나 없었다.  동네 아이들과 산에서 뛰어놀았고 혼자서도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산은 올라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놀이터였다. 평범한 내 유년시절을 기억하는 특별한 공간이 범골이라 불리던  마을 뒷동산이었다.


마을 뒷동산인 사패산에서 사패산보다

높은 산을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출발해 반야봉을 지나 산장에서 1박 하고 뱀사골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산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지리산에서 산이 신비롭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반야봉으로 가는 능선에서 운해를 만났다. 발밑에서 흘러가는 구름이라니. 그런 상황은 꿈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다.


그때부터 산이라고 다 같은 산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설악산이나 한라산을 가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어찌 보면

푸근한 어머니의 품 같았고 감이 넘볼 수 없는 거인 같기도 했다. 회사 내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서울과 멀리 떨어진 소백산, 태백산, 한라산, 영남알프스 등 명산을 본격적으로 올랐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등산은 중년이상즐기는 놀이였다. 가입하고 있는 회사 등산 동호회만 보더라도  20,30대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40,50대였다.


당시 누군가로부터 그 이유를 듣고 공감이 갔다. 20, 30대가 즐길만한 놀거리가 많은데 굳이 다리 아프게 산을 올라가냐고. 나이가 들수록 놀거리가 줄어드는 중년이상이나 산을 찾는다고.      


하지만, 요즘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나이 불문하고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인스타에서 100대 명산을 꾸준하게 하나씩 찾아가는 푸릇한 젊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점가에도 평소 산을 찾지 않았지만 이제는 등산에 관심을 가진 산린이들을 (산과 어린이의 합성어) 위한 책들도 간간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등산의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반가울 뿐이다.   

우리나라만큼 산과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나라가 어디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을 언제든 찾아갈 수 있으니..


내 경우에도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이내 북한산이나 도봉산, 불암산까지  서울 시내 대부분의 산을 당일로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출퇴근 길에서 조차 매일 같이

도봉산에 우뚝 솟은 만장봉, 북한산의 인수봉과 백운대를 볼 수 있으니 고마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높낮이와 절경의 유무에 따라 명산라고

할만한 산은 따로 있지만 존재감 없는 

. 어떤 산이든 아래에서 항상 우러러보게 되니까. 산에 오를 때 찾아오는 포근함은 어 산에서든 느낄 수 있으니까.


모처럼의 설악산행은 힘들었지만

산에서 받은 기운은 앞으로 한 달은 갈 것이다.


그때가 지나면 또 언제 힘들었냐는 듯 산을 찾을 것이다. 마치, 처음 산에 가는 것처럼.


산을 그렇게 많이 올라갔지만 찾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힘든 걸 알면서 왜 다시 찾을까? 왜 질리지도 않는 걸까? 


아마도 이건 평생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나만의 답은 가지고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인생길을 가는

친구니까.  친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좀 있으면 어떤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죽마고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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