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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co Oct 28. 2024

(풀코스)요리는 환영하지만 마라톤은 이제 사양합니다

춘마 10회 완주 & 명예의 전당 입성.

지난 일요일,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마라톤 레이스가 있었다. 렇다고, 최고의 기록이 나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10번이나

마라톤을 뛰면서 처음으로 기록인정 제한시간 6시간을 한참 지나 결승선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아홉 번이나 마라톤을 뛴 게 맞나 믿기지 않았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보니 달린 거리는 고작 10킬로쯤 되었을까.


춘마(춘천마라톤)는  내올해 마지막

남은 최고의 이벤트로 10년이상 진행된

버킷리스트중 하나를 끝낸다는 의미가 있다.


풀코스 마라톤 10회 완주자로 기록되고 덤으로 주최로부터 “명예의 전당  기념패”도 주어진다.


10년 이상에 걸쳐 매년 한 번씩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참가해 완주했다는 사실을 자랑한다고 누가 라 할까. 


"그래, 너 잘났다" 소리 한번 듣던 말던. 가슴과 다리의 고통을 이겨내며 땀으로 성취한 결과이므 완주의 기쁨을 잠시 누 자격은 있겠지.

대회일이 다가올수록 고민의 무게는 점점 늘어났다. 작년에 비해 체중은 2,3킬로나 불어 100미터만 뛰어도 숨이 헉헉 차 올랐다. 그럼에도 뛰어야 할까 말까 보다 어떻게 뛰어야 할까 고민으로 머릿속이 채워졌다. “이제, 한번 남았는데..” 라는 사실이 힘들어도 반드시 뛰기는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D 데이 하루전날, 불안한 마음에 무언가 준비는 좀 해야 할거 같아서 며칠 전 구입한 새 운동화를 신고 천변 인라인 스케이트장 트랙을 열한 바퀴 돌았다. 일주일 전 열 번 돌고 두 번째인 마지막연습이었다.


매번 대회 때마다 출발시작 직전에 대회장에

와서 부랴부랴 출발선에 섰는데 이번에는

아침 5시쯤 집을 나와 출발 한 시간 전에

여유있게  춘천 공설운동장에 도착했다.

그만큼 긴장했고 마지막 풀코스를 잘 마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출발 후 5킬로 정도 지나서 위험신호가 감지되었다. 머리가 점점 어질어질했다. 

지난 3월 제주도에서 있었던 자전거 사고의 경험으로 작은 위험신호조차 겁이 더럭 났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가까스로 10킬로 지점을 지났지만 뛰기보다는 걷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 옆에서 나처럼 걷던 분의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당이 떨어져서 힘이 안 나는 거지..”


원인이 당때문이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날밤늦게까지 무리해서 트랙을 돈 상태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으로 죽 반 공기만 비우고 뛰니

몸이 이럴 만도 하지 생각했다. 마침, 레이스 구간인 의암호 도로 주변에 편의점이 보여서 뛰쳐 들어갔다.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 그나마

소지품은 손에 달랑 쥐고 있던 스마트폰.

편의점 점원에게 사정을 말하고 빵값을

계좌이체로 송금해도 되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불가. 난감해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손님이 자기가 계산할 테니 어서 물건을 가져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복장을 보니 D그룹에 속해있는 여성 마라톤 참가자였다. 어찌나 그 말이 고마운지. 체면 차릴 상태가 아니었다.


송금해 주면 되겠다 싶어 보름달 빵을

집어왔더니 음료도 필요하지 않겠냐고 해서

바나나 우유까지 추가했다. 이후, 본인이 마실 음료를 계산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하며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고맙고도 당황스러웠지만 그분을 따라갈 힘조차 나지 않았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 빵봉지를 뜯고 허겁지겁 보름달과 바나나 우유를 단번에 먹어치웠다.

빵과 우유를 먹고 거짓말 같이 어지럼증이 가셨다.

작년처럼 하프지점에서 초코파이를 나눠줄 테니 어하든 21킬로인 하프지점까지 가기로 작정했다. 초코파이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힘이 더 생길 테니까 나머지 구간은 펄펄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과연, 생각대로 되었을까?


 하프지점에 초코파이는 널려 있었지만

개를 먹었더니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보름달빵을 먹고 체한 듯 싶었다. 급하게 입에 우겨넣고 소화도 되기전에 뛰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 이후, 다리에 쥐까지 나서 펄펄 날기는커녕

계속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시간을 보니 죽었다 깨어나도 제한시간인 6시간내 들어가기란 불가능했다. 제시간내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기록도 없어서 명예의 전당 입회도 힘들 텐데 무리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포기할까 갈등했다.


포기는 못하겠고 대회가 종료돼서 회송버스에 실려갈 때까지 가보자고 무작정 앞으로 갔다.

얼마 후, 뒤따라오던 회송버스에서

진행요원이 나와 이제 버스에 타지 않겠냐고

물어 잠시 흔들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쫌 폼나 보이긴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의문이 하나 생겼다. 제한시간에 못 들어갈 것 같으면 어서 버스에 타라고 채근할 텐데 왜 의향을 물어본 걸까?


혹시, 완주하려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대회가 계속되는 게 아닐까?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 분이 옆에 계셔서 물었더니 제한시간이 지나도 대회는 진행되는 거라고 확인해 주었다.


제한시간은 그야말로 기록을 인정하는 제한시간일 뿐. 완주는 완주대로 인정해 줄 거라 했다.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 완주만 하면 명예의 전당 대상자에도 포함된다고..

지금까지 9회나 풀코스를 뛰면서 제한시간에는 모두 들어왔기에 제한시간이 지나면 대회가 자동으로 마감되는 줄 알았다. 그 말에 다시 힘이 났다.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결국 제한시간 6시간에서 50분을 지나 고통 속에서 10회 완주의  기쁨을 만끽했다.


오로지 완주만을 목표로 했지만 그동안 열 번을 뛰면서 마라톤을 인생의 여정에 비유한 말이 이번처럼 가슴에 절실하게 와닿았던 적이 없었다.


꽉 찬 10이란 숫자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을 줄이야.


편의점에서 선뜻 빵과 우윳값을 내주신  

천사 같은 분이 없었다면, 포기하지 않고 걸어서라도 완주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과연 완주했을까? 회의적이다.


특히, 초면인 내게 베풀어준 이름 모를 그분의  선의를 어찌 잊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갚아야 할 고마운 부채라고 생각한다. 주인 잘 못 만나서 매년 혹사당한 심장과 다리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 하고 싶다.


"애썼다. 이제 좀 살살 다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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