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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위에서 한강 읽기

한강과 친해졌습니다

by Marco

보석처럼 반짝이는 윤슬. 공불락의 성채

같은 구름. 창공에서 튀어나와 면위로

날개를 펼친 왜가리. 남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오른 남산타워.


초가을 강의 아침은 눈부시다. 한강이 원래 이런 모습이었어? 상큼한 바람 한 줌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하루 두 번, 당산철교로 한강을 건넌다. 전철이 합정역을 통과하거나 당산역을 출발하면 곧 눈앞에 펼쳐질 풍광을 떠올리며 눈은 이미 창밖에 가 있다.

전철이 철교 위를 지날 때 외국인 관광객들도 창가로 바짝 다가간다. 최근, 한강과 부쩍

친해졌다. 매일 한강을 보는 호사를

누리니 당연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여주에서 충주까지 한강 자전거길 마지막 구간을 달렸다.


아침 10시 반 충주 고속버스 터미널을

출발해서 충주댐, 탄금대, 원주 섬강,

여주 강천섬을 지나 저녁 8시 여주역까지

약 90킬로. 경인아라뱃길에서 시작한 280킬로미터 여정을 마무리했다.

달 전부터 매주 주말 하루, 자전거를 끌고 한강 변으로 갔다. 한강과 가까운 곳에 있는 덕소역, 운길산역, 청평역, 양평역으로 전철을 타고 이동해서 오후 2시 혹은 3시경부터 자전거를 탔다.


춘천 쪽으로 향하면 청평역, 아라뱃길 쪽은 마곡나루역, 양평 쪽은 운길산역으로.

그렇게 5, 6시간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시 전철로 귀경했다. 늦지 않게 귀경하려면 출발전에 목적지 근처에 역이 있는지 파악하는 건 기본.


드문드문 두툼한 짐 가방을 매단 자전거가 지나갔다. 아마도 부산까지 국토종주에 도전

하는 사람일 것이다. 대단해보였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체력에 지금은 한강을 종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종주를 하겠다는

계획 따위는 없었다. 인천이나 양평까지 달리다 보니 여주, 충주까지도 갈수 있겠다 싶었다.

주말이 기다려졌다. 한강 변을 달릴 때

만큼은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바람을 가르며 한강변을 달리는 순간 머릿속에 엉켜있던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선을 끌어당기는 풍경을 보면 가급적 멈추었다. 맨발 걷기를 위해 조성된 진흙 길을 보면 잠시 양말을 벗고 걷기도 하고 시심이 생기는 공간에서는 무언가 떠오를 때까지 강을 바라보았다. 강변의 전망 좋은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기도 하고 밥때가 되면 마을 입구 정자에 앉아 준비해 온 빵과 생수로 허기를 달랬다. 가끔 책장을 열어볼 때는 문장이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길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걷기보다는 빠르고 자동차보다는 느린 자전거 타기의

맛을 최대한 즐겼다. 한강이라는 길동무가

언제나 함께 했다,

양평 두물머리, 여주 강천보 은하교, 광진교나 탄금대에서 보는 한강의 얼굴은 조금씩 달랐다. 산봉우리를 끼고 흐르다가 다리 밑을 지나며 댐과 보에서는 잠시 숨 고르며 속도를 줄였다.


무엇이라도 품을 수 있다고 두 팔을 벌린 듯.

품은 언제나 넉넉했다.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모였다.

가까이 있으면 금세 닮기라도 하는 걸까.

강에서는 누구든 편안해 보였다. 한낮의 충주 중앙탑 공원과 저 물 녘의 광나루 자전거 공원, 뚝섬 생태숲, 여의나루 한강공원 주변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 사람들은 강을 따라 걷거나 달리거나 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강을 종주하고 나서 마음의 영토가 그만큼 넓어졌다. 상상 속에만 머물러 있던 공간을

이제는 언제든 기억에서 불러낼 수 있다.

접 보고 느꼈으니까. 누군가 한강의 숨겨진 명소를 몇개 알려 달라고 하면 자신있게 말해주리라.

가평 자라섬에 가면 걷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명품 진흙길이 있으니 꼭 걸어보라고. 여주에서는 강을 유유히 흘러가는 황포 돛배를 타보고 길이 515미터나 되는 남한강 출렁다리를 건너보라고, 힐링천국 강천섬과 비내섬도 꼭 가보라고. 아라뱃길에 있는 아라폭포의 비경을 놓치지말라고. 아라뱃길 아라타워 전망대에 가서 영종대교와 서해의 일몰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강을 건넌다.

북쪽과 동쪽에서 각각 출발해 수리에서

만나 먼 길을 굽이굽이 돌아 마침내 서울

영등포까지 왔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을까. 겉보기에는 어제와 같지만 어제와는 엄연히 다른 강일 것이다. 어제의 강은 이미 바다에 도착했을 테니까.


걷든 자전거든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

주말 휴일에 따릉이라도 빌려 잠시 한강변을 달리며 가을날을 만끽해 보는 건 어떨까.


혹시 아나? 귀를 쫑긋 세우면 여정 동안 었던 내밀한 이야기 들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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