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 배경 화면은 제임스 웹 망원경이 찍은 카리나 성운이다. 별들이 태동하는 무한할 듯 거대한 구름 더미에 입혀진 주황빛 푸른빛의 무수한 스펙트럼은 자체로 마음을 선덕이게 한다. 그리고선 그 사이사이 반짝이는 수천 광년 떨어진 별빛. 그 모든 광경은 지구의 가장 진보된 기술로 수천년된 빛을 모아 구현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을 매일 볼 수 있게끔 발달한 스마트폰 기술에도 감사할 만큼.
카리나는 아름답다.
얼마 전 한 아이돌의 사진이 초미의 관심을 받는 것을 보았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하고 산뜻한 미소와 함께 브이를 펼쳐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예쁜 모습이지만 관심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뒤이어 나온 원본 사진은 사진 전체적으로 그물망이 펼쳐진 사진이었다. 즉 야구장 그물을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을 정성을 다해 그물을 제거하는 보정을 한 것이다.
어차피 초상권 등의 권리가 거대한 회사에 있는 바 이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을리 만무하고, 아마도 순수한 팬심의 발로일 것이다. 사진 하나에 이런 정성을 들이게 하는 이 피사체는 카리나였고, 그래서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카메라에 눈을 맞춘 채 핑크빛으로 상기된 볼, 살짝 미소짓는 입술, 성운 구름처럼 드리워진 긴 머리. 이에 대비되는 주황빛 배경. 이 모든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카리나는 아름답다.
성운만큼 아름다운 이 사람을 처음 깊이 인지하게 된 것은 열애설로 곤욕을 치를 때였다. 물론 그 전에도 존재를 모르진 않았다. 다만, 한창 선덕이는 마음을 주체 못할 20대의 청년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에 사과를 해야 하는 산업의 비정함에 생각이 많아졌던 탓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아름다움이 상품으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산업이다. 돈과 시간 그리고 애정으로 지불하는 산업의 특성상 법적인 잣대와 별개로 이 자연스러운 행위는 신의성실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마저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경제가 만든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기괴한 현실이다.
이 현실속에서 카리나의 잘못도 없고, 실망한 팬들의 잘못도 없다. 무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주의의 놀라운 능력으로 무에서 만들어진 잘못일 뿐이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 고통받고 상처받았을 한 어린 친구의 마음이 못내 안쓰러운 것은 냉철한 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소심한 인류애적 반항이다. 그러나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고통은 그녀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있었을테니… 그 누구도 잘못했다고 하기는 머뜩찮다.
카리나 성운은 광대하다. 그 앞에서 이 지구의 고통들은 미세해보이지만, 당사자인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관은 원근법과 같이 가까운 존재가 더 커보인다. Pale Blue Dot이 이야기한 대의는 이 고통이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고통들에 다정한 호의를 주어 더 큰 행복으로 나아가자는데 있다. 연예인 걱정을 하는거 아니라지만, 그래도 카리나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 행복으로 하여금 더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