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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Jul 16. 2024

하늘

*2023년 가을의 이야기


 무더웠던 공기가 한풀 꺽이고, 선선함이 감돌고 있다. 가을 하늘이네? 하는 한마디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푸르고 맑게 펼쳐지고 있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반사되고 산란되어, 이 행성의 한 존재가 가진 망막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깊은 감동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은 세상의 신비로운 이치가 아닐 수 없다. 하늘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능성이었으며, 콘텐츠이기도 했다. 한 시기에는 저 하늘을 인간에게 복속시켜, 신이 간택한 인간의 터전을 둘러싼 것으로 인식하기도 했고, 이후로는 우리의 세계관이 아주 미약한 일부임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중력의 저주를 극복하여, 무한한 미지를 밝히고자 하는 동기부여이기도 하면서, 영화 그래비티가 보여주듯 중력의 축복 아래 편안함을 선사하는 천장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하늘에 대한 많은 추억들은 인류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존재한다.


 최초의 추억은 초등학생 때이다. 어릴 때 나는 수업시간에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였고, 이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날 걱정하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그 시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가 시행하는 어린이에 대한 사회화의 방식에 썩 잘 적응하지 못했던 내게는 그 하늘이 안식처이기도 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마음은 어릴 적부터 깊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지금까지도 너무나 좋아하고, 착륙하는 때에는 정체모를 심란함이 드는 것은 이 욕망 때문일 것이다. 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결말부에서 읽었던 날개를 그리워하며, 날아 오르리란 희망을 노래하는 장면을 인상깊게 사랑하기도 했다. 자각몽을 꿀때에는 항상 날아다닐 수 있었고, 그 기분을 사랑한 나머지 어떻게 하면 날 수 있는지 감각을 기억해 두었고, 어느새 꿈속 비행 숙련자가 되기도 했다.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하늘은 단연 인도의 북쪽 끝 히말라야에서 본 하늘이다. Kibber라는 히말라야 고원에 위치한 마을에 갔을 때, 고산병으로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지끈거리고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든 상태에서도, 너무나 가까웠던 하늘과 언제라도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의 기억은 오랜 세월속에서 나에게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기억되고 있다. 마을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수양하던 티벳 승려들의 붉은 가사와 황량한 밝은 흙색의 산맥, 그리고 그 위로 펼쳐진 하늘. 승려들의 수행이 인간 삶의 허망함을 인식하고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는 것이라면, 그 곳은 더없이 적합한 수행 장소일 것이다.


 슬픈 하늘의 기억은 군대에서다. 막 입대한 시기,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고, 그 얼마 후, 북한의 추가 도발이 의심되는 시기, 기지를 비우고 인근의 야산에 주둔하여 대기하라는 경보를 받고, 바라본 하늘은 불안하고 슬펐다. 저 하늘에서 포탄들이 날아온다면 내가 당연하게 느껴온 평화는 일순간에 산산조각 날 것이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나쁘게 바뀔 것이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불안하게 바라본 하늘, 그 위에는 슬픔이 있었다. 사람이 만든 찬란함의 반대에 자리한 갈등과 폭력. 그 하늘은 이 애처로운 대차대조표를 보여주었다.


 우주에 가 보는게 삶의 큰 꿈 중 하나다. 내 세상을 숲을 바라보듯 보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내가 인식하는 하늘 위의 하늘을 보고싶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러한 우주 여행이 부유층의 호사스런 경험이 될 정도까지는 현실화가 된 것 같다. 많이 성공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늘은 자체로 현상이고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걸 바라보며 삶의 동기를 부여받고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신비롭고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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