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긍정, 세상에 대한 다정
“중심을 잡자.”
삶의 여러 순간 속에서 심심치 않게 되뇌이는 말이다. 세상의 풍파는 자비롭지 않게 휘몰아쳐 사람을 흔든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멀미하고, 상처나고, 고통받는다. 그래서 되뇌인다.
“중심을 잡자.”
중심을 세웠을때 덜 흔들리고, 안정되며, 안전하다. 안정과 안전.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모두가 추구하는 것.
예로부터 중심은 모두에게 추구할 만한 목적지였다. 중심으로 수식되는 것들은 항상 긍정적이었다. 나라의 중심은 수도이고, 조직의 중심은 장이듯. 중심은 그렇게 권력의 상징이면서 힘을 나타낸다. 이 중심을 추구하는 마음의 근저에는 결국 권력의 추구가 있다. 복잡 다단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자원, 권력. 그것이 중심에 대한 열망이 가진 근본이다.
이 욕망이 어찌 부당하겠는가? 잘 살아가기 위하여 갖추겠다는 의지일 뿐. 그 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듯, 어디가 중심인가 하는 고민도 항상 삶의 역사를 따라다닌다. 우주의 광대함을 인지하고, 내가 사는 지구, 태양계, 은하가 무한한 우주의 극히 일부임을 깨달은 가운데, 일언반구도 없이 세상에 던져진 지적 존재로서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놀랍게도 우주의 중심은 없다고 한다. 지구 위에서 사고에 익순한지라 쉽사리 상상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주는 그렇게 미미한 두뇌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 넘는다. 마치 세계지도를 놓고 중심이 어디냐를 따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 어느 지점이든 변두리이며 중심이다. 이 사실은 새삼 놀랍다. 그토록 찾아헤메던 우주의 중심이 다름아닌 지금 이 순간 나일 수 있다는 것.
결국 중심을 잡자는 되뇌임은 다시금 나를 잃지 않고 온전히 인지하며 긍정하자는 주문이다. 그러한 나에대한 인지 위에서, 세상의 풍파는 그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거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선택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선택에 여유를 좀 더 보탠다면, 세상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다정함 정도가 아닐까? 중심은 나이기도 하지만 내가 인지하는 모든 것들도 중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