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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03. 2022

봉슈먼, 부엔까미노!

#2

  생장 피에드 포르 Saint-Jean-Pied-de-Port는 만만한 마을이 아니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여기까지 자동차로 약 7시간 정도 걸리니까 당연히 기차를 타면 더 빨리 도착할 줄 알았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생장이 있는 피레네 산맥 자락에는 떼제베(고속 기차)가 다니지 않고 우리나라 무궁화보다 훨씬 느린 기차가 달리는 걸 몰랐다. 내 친구 조셉이 마르세유 역까지 나를 데려다준 게 아침 6시였다. 툴루즈에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다시 바욘에 가서 버스를 타고나서야 도착했다. 저녁 6시 반쯤이었다. 꼬박 12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오랜 시간 앉아 있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도 전에 허리가 뽀사지는 줄 알았다. 옛날부터 느끼는 거지만 프랑스 교통편 의자들은 하나같이 불편하다.



  추적추적 비가 왔다. 습기도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흙탕물이 내 새 신발에 튈까봐 질펀한 흙바닥을 살짝 밟으며 마을 한가운데로 향했다. 마을은 나에게 꽤 익숙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처음 걷지만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여러 번 봤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순례길을 여러 번 걸은 셈이다. 상상만 하던 마을이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별로 감흥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 헤맬 때 나는 길을 아는 것처럼 앞으로 직진했다. 거리에서 헤매는 사람들은 곧장 걸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따라오기도 했다. 순례자 사무실엔 봉사자 몇 명과 순례자 등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인도 여럿 있었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는지 감탄스러웠다. 한 사람씩 사무실 책상에 앉아 순례자 등록을 하려는데 영어를 할 수 있는 봉사자가 딱 한 사람 있었다. 다른 봉사자들은 프랑스어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어떤 프랑스 마담이 사무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Qui parle le français? 누구 프랑스어 하는 사람 없어요?”

“Oui moi! Je peux parler le français. 저요! 저 프랑스어를 해요.”

“Super. Asseyez-vous, s'il vous plaît. 좋아요. 여기 앉으세요.”


순례자 사무실


  그 자리에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프랑스 마담은 나에게 주변에 한국 사람이 있으면 같이 앉으라고 부탁했다. 한꺼번에 순례자 등록을 하게끔 만들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만난 한국인들에게 내가 통역해줄 테니 같이 와서 앉자고 했다. 그제야 나는 한국분들과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홍콩에서 오신 교포분들이었다. 우리가 순례자 등록 종이에 인적사항을 적고 있을 때 프랑스 마담은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너는 왜 프랑스에 왔니”, “프랑스어는 어디서 배웠니”, “산티아고는 왜 걸으려고 하니”. 역시 프랑스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꼬치꼬치 모든 것을 묻는다. 나는 더 이상 말이 길어질까 봐 말을 끊고,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하는지 물었다. 마담은 자기가 말이 좀 길었다는 걸 느꼈는지 “아 미안  Ah Pardon”을 외치고 본 역할로 돌아왔다. 그녀는 한국 사람들이 55번 알베르게라고 부르는 곳으로 알려줬다. 꼭 그곳으로 가지 않아도 되지만 카미노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라서 가격이 훨씬 싸다는 말도 해줬다. 곧이어 크레덴시알이라고 불리는 순례자 여권에 첫 도장을 받고 프랑스 마담은 마지막으로 내 눈을 쳐다보며 한 마디를 했다. ‘봉 슈먼, 부엔 까미노!’ 짧은 말이지만 얼마나 가슴 설레었는지 모른다. 이제 나는 순례자가 되었다.


생쟝 피에드 포르 Saint-Jean-Pied-de-Port


  그날 저녁, 나는 생장 마을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내일을 생각했다. 몇 시에 일어나야 하지, 사람들이 많으면 어떡하지, 어떻게 잘 걸어야 하지, 걷다가 다치면 어쩌지,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랑 뭘 얘기하지,,, 각종 고민이 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걱정과 고민의 99프로는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결국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일단 잠부터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일단 걸어보는 거야. 안되면 중간이라도 돌아갈 집이 있는 게 어디야.



* 순례길 브이로그 보기 : 순례길의 시작점, 바욘을 거처 생장까지 열두시간

https://youtu.be/MZ2TUeRT6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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