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곰 Nov 23. 2022

문명의 재발견

#9

  순례길을 시작한 지 몇 날 며칠이 지났지만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어깨를 짓누르는 뻐근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좋은 등산화를 신었지만, 길가에 널려있는 돌멩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감각을 발바닥에서 느낄 수 있다. 가끔은 돌멩이들이 내 발에 밟히는 걸 거부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만나지 않은 돌멩이가 이토록 깨알 같은 아픔을 줄 이유는 없을 테니까. 비단 통증은 발바닥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서히 내 다리를 올라타 종아리와 허벅지를 지나 사타구니까지 자극한다. 마침내 엉덩이까지 아프게 하는데, 나는 살집 많은 엉덩이에 그렇게 근육통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번은 한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이 아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순례길에서 많이 힘들어? 얼마나 아파?


나는 이 질문에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야 했다. 아무리 내 상황을 설명해도 친구들은 내 고통을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몸에 뼈가 몇 개인지 알 정도야.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순례자들


  정말 그렇다. 한 걸음, 한 발짝 내닫다 보면 발바닥과 지면이 닿는 순간 그리고 오른발과 왼발이 바뀌는 순간에 내 뼈가 몇 개인지, 그 뼈 근처 어디에 근육이 붙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통증이 뭉뚱그려서 느껴지는 게 아니고 마디마디 아주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고등학교 생물과학 시간에 우리 몸은 약 200여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는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너무 큰 통증이 한 뼈에만 집중될 때는, 마치 공포 영화의 해골 귀신처럼 아픈 부분만 쏙 빼서 수리하고 다시 제자리에 집어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시덥지 않은 상상까지 했다.


  또 겨우 10킬로 그람 밖에 되지 않는 가방이지만 마치 쌀 한 가마니를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무게감을 상당히 느끼고 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가방 내용물을 최소한으로 정리하려고 했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건 필요한 거,, 저것도 필요한 거,, 꼭 필요한 물건만 적게 가져왔는데도 왜 이렇게 가방이 무거운 지 모르겠다. 그나마 1.5리터짜리 물병을 사지 않고 500미리 작은 물병을 사는 걸로 무게를 줄이고 있다. 


길에서 냅다 자버리기


  그래서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알베르게 침대에 벌러덩 눕는 순간이다. 한참 누워 있는 것보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알베르게 방에 처음 들어가서 쓰러지듯 눕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어쩌면 이게 고이 쉴 수 있는 하루의 유일한 순간이다. 밤이 되면 고요한 가운데 푹 쉴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실제론 고요한 밤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많은 순례자들과 한 방에서 같이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알베르게는 흔히 도미토리라고 불리는 숙박 형태와 동일하다. 최소 네 명에서 여섯 명, 가끔은 스무 명 이상 되는 순례자들이 한 방을 이용한다. 운이 좋으면 일층 침대만 있는 방을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이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옆에 있는 순례자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어젯밤 로스 아르코스 Los Arcos에선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내 윗 침대를 이용한 사람은 스페인 사람으로 추측된다. 직접적으로 말은 걸지 않았지만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랑 스페인어를 와다다다 내뱉은 거 보면 내 짐작이 맞을 거다. 여하튼 낮에는 그 스페인 사람과 반갑게 인사했다. 같은 순례자니까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있으니까 그저 웃으면서 인사치레를 나눴다. 


크레덴시알에 찍힌 도장


  문제는 밤이었다. 나는 밤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내 느낌으로 한 30분 정도 지났을 때, 이상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새벽 두 시를 막 넘어갔을 때였다. 나는 그 소리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천둥번개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내 스마트 폰에 있는 일기예보엔 폭우라든지 벼락과 돌풍을 동반한 날씨가 예고되어있지 않았다. 그럼 밖에 있는 야생 동물이 우는 소리인지 커튼을 젖혀 밖을 둘러봤다. 아니었다. 고라니는커녕 동네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 평생 그렇게 세상 무너지는 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짜증이 섞인 졸음 속에 나는 한참을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찾아 헤맸다. 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다. 그 소리는 내 바로 위에 있던 스페인 아저씨가 코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고, 머리 밑에 있던 베개를 귀에 붙여 놓아도 스페인산 코골이 소리는 여전히 선명하게 들렸다. 오늘 밤은 자기 글렀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문득 내 호주머니에 있던 에어팟이 생각났다. 이거였다. 요즘처럼 문화 사회에서 고도로 발달된 기술을 이용하는 게 정답이었다. 나는 곧바로 에어팟을 내 귀에 꽂고 노이즈캔슬링 모드를 켰다. 효과는 즉방이었다. 더 이상 스페인 아저씨의 코골이가 들리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잠을 잤다. 기술은 부족한 사람의 단점을 채우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발전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꿀맛 같은 잠에 한참 빠져있을 때, 나는 또다시 굉음에 깨고 말았다. “따라라라-” 이건 아까 들었던 소리와 다르게 너무 영롱했다. 나는 이 소리가 어디서 난 건지 재빨리 알 수 있었다. 에어팟의 배터리가 떨어졌을 때 나는 경고음이었다. 평소 같으면 침대 머리맡에 콘센트를 껴놓고 에어팟을 충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스페인 코골이를 피하기 위해 충전을 하지 못했다. 결국 내 귀에서 충전 좀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에어팟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날, 나는 잠을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두 시간도 깊은 잠이 아니었으니까 한 순간도 잠을 못 잔 셈이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사람의 모든 부족함을 채울 수는 없다고 내 의견을 바꿔야겠다. 사람이든 기계든 티끌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불편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괴로운 건 자기 자신뿐이다. 한계를 인정하고 안고 나아가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주문을 걸어야겠다. 그 코골이 스페인 아저씨도, 내가 안고 가야 할 한 순례자의 봇짐으로 여길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나는 그 아저씨를 다음 날 다른 도시에서, 같은 알베르게 같은 침대에서 다시 만났다.


* 순례길 브이로그 보기 : 힘들땐 낮잠과 술

https://youtu.be/SPIx41U20WI

매거진의 이전글 갈대 같은 순례자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