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곰 Mar 06. 2024

프랑스에서 운전하면서 느낀 것들

한국 사람은 프랑스에서 운전면허증을 교환할 수 있다. 다시 필기시험을 보고 또 주행 시간을 채워서 그 나라 운전면허증을 따야 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 도착한 직후 1년 이내에 한국 운전면허증을 내가 살고 있는 지방 경시청에 제출하면 프랑스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서 준다. 물론 한국 사람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건 아니다. 여행객은 당연히 해당사항이 아니고, 교환학생이나 유학생처럼 학생비자를 갖고 있어도 교환이 불가능하다. 나는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엑상프로방스 대교구에서 방문자(Visiteur) 비자로 신청할 수 있게끔 도와줬기 때문에 프랑스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수 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발급받았다는 증명서와 운전을 했었다는 경력 증명서 그리고 비자 관련 서류, 마지막으로 내 조그만 한국 운전면허증을 경시청으로 보내면 된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 서류 접수에 문제가 없다며 확인증이 나에게 전달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우리나라를 벗어나면 공기업 업무 처리 능력이 오래 걸리는 건 당연하지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하겠다는 의식조차 없어져서 내가 운전면허증 교환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까먹고 살아야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운전면허증 (출처: 프랑스 경시청 예시 사진)


드디어 받은 운전면허증

나는 프랑스 운전면허증을 받는데 11개월 걸렸다. 그렇게 좋지 않은 종이에 사진을 흑백으로 인쇄해서 허접하게 코팅한 듯한 프랑스 운전면허증. 이걸 받으려고 그 오랜 시간 인내하며 살았던 거다. 운전면허증이 담겨있는 봉투가 집 우편함에 꽂혀있었을 때 감격의 눈물보다는 욕 한 바가지를 내쏟기만 했었다. 그만큼 기다림의 시간이 한국 사람에겐 무척이나 힘들다. 그런데 이 사연을 내 프랑스 친구에게 말했다가 더 큰 욕을 할 뻔했다. 


그날은 새로 받은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학교에 가던 때였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짧은 거리를 걷는 내내 한 숨을 퉤퉤 뱉으며 걸었다. 이 모습을 본 친구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지난 11개월의 기나긴 여정을 아주 짧게 요약해서 말해줬다. 그 친구는 내 얘기를 가볍게 듣고선 한 마디를 딱 했는데 이 말에 나는 진절머리가 나버리고 말았다. "주현, 11개월 걸렸다고? 와 엄청 빨리 받았네! 난 1년 이상 걸렸어!" 프랑스 3대 이념 중에 평등 Egalité처럼, 프랑스 행정 처리 속도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람에게도 자비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프로방스 라벤더 밭까지 운전


나에게 배정된 자동차

프랑스 운전면허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연합 안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른바 '천하무적 면허증'이었다. 나는 엑상프로방스 시내뿐만 아니라 가까운 마르세유 그리고 저 멀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까지 달리고 달렸다. 자동차는 학교에서 제공해 줬다. 학과 학생들을 위해 무상으로 빌려주는 공용 차량이 6대나 있었다. 대부분 20년 가까이 된 고물 차량이었고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수동 기어를 이용해야 하는 차량이었다. 평소에 이 차량은 학과 실습이나 행사 아니면 세미나 참석을 위해 사용한다. 학생들 대부분 운전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공용 차량 중 한 대는 내가 운전해야 했다. 


나에게는 8년밖에 안된 르노 클리오 자동차가 배정되었다. 나름 새 차였다. 게다가 유일한 오토 기어로 운전할 수 있는 차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한몫했었다.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는 다른 프랑스 학생들이 오토로 운전하는 건 운전하는 게 아니라며 이 자동차를 반납했다는 거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생각이지만 어찌 되었건 나에게 가장 좋은 차가 배정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운전하는 방법

무릇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운전을 하면 겁부터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가 한국보다 운전하기 편한 나라라고 자신감 있게 얘기할 수 있다. 국도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등 길이 어떻게 닦여있는지는 얘기할 수 없다. 일직선으로 뻗어있고 까만 아스팔트가 두껍게 깔린 방식 등 도로를 만다는 건 다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운전하기 편하다고 말하는 건 이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운전 매너다. 저 멀리 사람이 보이며 속력을 일찍부터 줄여서 그 사람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한다. 그곳이 횡단보도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사람이 자동차보다 먼저다. 그렇다고 운전자가 짜증 내는 것도 아니고 웃으면서 보행자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가끔은 그 보행자가 입으로 감사합니다 Merci beaucoup이라고 말하거나 엄지를 척 내밀며 최고라고 가리킬 땐 운전하는 사람으로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고속도로에서는 대부분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 1차선은 무조건 추월 차선, 자가용은 2차선을 달려야 하고 화물차나 트럭 등 대형 차량은 가장 바깥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 만약 1차선에 추월을 할 상황이 아닌데 차가 들어와 있으면 왼쪽 깜빡이를 켜며 곧 2차선으로 변경할 거라는 신호를 보여준다. 고속도로를 나가야 할 때는 미리 준비한다. 도로 안내판에 고속도로 출구까지 5Km 정도 남았다고 하면 프랑스 운전자들은 그때부터 가장 바깥 차선으로 조금씩 바꿔서 속도를 늦추고 나갈 준비를 한다. 또 국도 대부분은 신호등이 없다. 사거리엔 회전 교차로(로터리)가 꽤 많이 설치되어 있다. 가운데 동그란 구조물을 중심으로 자동차가 빙빙 돌아 자신이 나가야 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구조다. 이 회전 교차로에서는 이미 들어와 있는 차가 먼저다. 차가 보이면 진입하려는 차는 무조건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나가려고 할 때 깜빡이를 켜고 미리 뒷 차량에서 신호를 준다. 이 모든 법규나 운전 매너는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 있는 운전자가 얼마나 있을까? 설사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실행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A7 고속도로


우리나라의 불편한 운전 방법

그렇게 운전한 지 4년 차가 되었을 때 리옹에서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는 익숙한 아셉(A7) 고속도로를 타고 한창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건 아니었지만 막히진 않았고 모든 차량이 여유 있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순간 이토록 편안한 운전이 있을까 하며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은 왜 도로에서 싸우고, 늘 막히고, 운전 매너가 없는 사람이 많을지 한탄스러웠다. 한참 고만하다가 이윽고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우리나라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있다고. 공동체성을 강조하지만 그렇다고 공동체는 잘 이루지 못하고,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꼭 개인주의가 아닌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커져가고 있다.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여러 사람이 모여 소규모 집단이 이뤄지는 집단 이기주의.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 도로 위에도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나만 빨리 가면 되고 나만 차선 바꾸면 되고 나랑 뒤에 따라오는 아는 사람 차만 배려해 주는 이런 모습. 세상 편안한 운전을 하면서 가슴 한편은 불편한 운전이 아닐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멸치 볶음이 맛있어서 그리운 게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