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프랑스에서 산 지 3년 차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프랑스의 생활 방식을 익히고 지역 문화를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겠다고 호기롭게 한국을 떠났지만 우여곡절이 상당히 많았다. 그중 하나가 음식이었다. 나는 나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심지어 아프리카 오지에 출장에 갔을 때도 다들 꺼리던 전통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잠깐 먹었던 낯선 음식이 일상 음식이 되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주말엔 꼭 한국 음식을 요리해서 먹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밥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으니 나도 웬만한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친구들과 기숙사 친구들을 불러서 한국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여유도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반찬이 하나 있다. 낯선 땅, 프랑스에선 구할 수 없는 재료다. 가끔 이곳에 놀러 오는 한국 친구들을 통해 그 재료를 받아오기도 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맛을 똑같이 재현해내기는 어려웠다. 바로 '멸치 볶음'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래서 언제인지 모를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요리할 때면 옆에 찰떡같이 붙어서 도우미를 자처했다. 내 눈은 언제나 엄마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는 양념통을 들어서 대충, 톡- 톡- 넣지만 기가 막히게 간이 딱 맞았다. 나는 저울보다 정확한 엄마의 손이 매우 신기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엄마 곁에서 요리를 도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쩌면 나의 까만 속내이기도 했다. 갓 요리 한 음식을 바로 먹을 수 있는 기회, 나는 언제나 요리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엄마는 내 속내를 다 알면서도 양념을 하나하나 넣을 때마다 맛을 보라며 내게 음식을 입에 넣어줬다. 다른 가족들은 "이따 밥을 먹어야 하는데 벌써 그렇게 먹어버리면 어떻게 하냐"라고 타박을 하곤 했지만 엄마는 내게 분명하게 맛의 감별사 역할을 맡겼었다. 내가 싱겁다고 말하면 엄마는 소금을 더 넣었고 내가 짜다고 하면 다른 양념을 더 넣었다.
하지만 멸치 볶음은 내가 유일하게 맛을 잘 보지 않았던 반찬이었다. 맛이 없어서 안 먹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먹어서 탈이었다. 잠깐 맛을 보겠다고 젓가락을 들고 멸치를 몇 번 집고 나면 벌써 절반이 내 뱃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엄마는 멸치를 볶고 난 다음, 나 몰래 반찬통에 바로 넣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분명 엄마의 멸치 볶음엔 한번 먹으면 끊임없이 먹게 되는 마성의 힘이 담겨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만큼 엄마의 멸치 볶음은 맛있었다. 특별한 레시피는 없었지만 달콤하고 바삭하며 고소하기까지 했다. 멸치의 잔 비릿 맛도 없었다. 보통 멸치 볶음을 먹으면 입안에 비린맛이 가증스럽게 남기 마련인데 말이다. 큰 멸치나 중간 멸치를 쓰지 않고 아주 작고 가느다란 잔멸치를 볶음으로 사용했던 게 이유였을 것이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중간 불에 달궈진 프라이팬에 '잔멸치'를 달달 볶아내야 비린 맛이 달아난다"라고 말했었다. 엄마의 레시피는 꽤 단순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식용유를 살짝 두른 다음 물엿을 넣었다. 그리고 볶음이 거의 끝나갈 즈음 엄마가 반드시 넣는 게 있었는데 땅콩, 아몬드, 호두 같은 견과류였다.
"엄마는 왜 멸치 볶음에 견과류를 넣는 거야?" 엄마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건강하려고." 멸치에 칼슘이 가득 담겨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가장 작지만 가장 완벽한 반찬, 이게 바로 멸치 볶음이다. 엄마는 여기에 견과류를 넣어서 더 완벽한 영양소를 갖춘 반찬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하긴, 그럴만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 꽤나 아팠다. 덩치는 크지만 너무 허약한 체질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팠다. 버스나 자동차를 타면 토하기 일쑤였고 날이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몸살에 걸리시 십상이었다. 초등학생 땐 하도 병가를 내서 졸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까지 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조미김에 멸치 볶음을 밥과 함께 싸서 내 입에 넣어줬다. 내게는 멸치 볶음이 반찬이자 약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좋은 재료, 좋은 양념, 온도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같은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것과 아무런 감정 없이 만든 음식의 맛은 다르다. 엄마와 멸치 볶음에 견과류를 넣은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이 반찬을 먹는 우리 가족들이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특히 허약한 내 몸이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엄마의 멸치 볶음 레시피는 단순하지만 엄마는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멸치 볶음에 담았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마만의 특별한 레시피였다.
프랑스에도 멸치는 있다. 엉슈아Anshois라고 불리는데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제법 크다. 값은 꽤 나간다. 워낙 프랑스 사람들이 해산물을 잘 먹지 않을뿐더러 우리나라처럼 풍부한 바다 어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손님을 위한 음식을 준비할 때 이 엉슈아를 한국식으로 조리해서 내놓는다. 먼저 아침 시장에서 신선한 엉슈아를 깨끗하게 씻은 다음 기름에 튀긴다. 그리고 중국인 마트에서 산 물엿과 참기름으로 볶아내는데 여기에 견과류를 손바닥으로 억척스럽게 부셔서 레몬즙과 함께 넣어야만 완벽한 음식이 된다. 엄마가 내게 해 준 멸치 볶음을 착안해서 만든 나만의 요리다. 내 요리를 먹은 프랑스 사람들은 연신 쌍 따봉을 치켜올리며 엉슈아에서 이런 맛이 날 수 있냐며 감탄한다.
하루는 나이 지긋하신 프랑스 마담Madame이 이 요리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내게 물었다. 나는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변형해서 만든 거였다. 마담은 내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 내가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식탁 위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시간에 따라 기다릴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엄마가 해준 멸치 볶음이 너무 먹고 싶어서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프랑스에서 홀로 살면서 쌓아둔 여러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마담은 연신 내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때 왜 눈물을 흘렸을까? 나는 왜 엄마의 멸치 볶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몇 해전 어떤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적 있다. 전통이란 하나의 형상이 아니고 그 안에 담겨있는 가치, 그러니깐 왜 선조들이 그 모습을 만드려고 했는지에 대한 지혜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왜 멸치 볶음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단순하게 엄마의 멸치볶음이 까무러치게 맛있어서 그리워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아플 때 싸주던 엄마의 멸치 김밥, 내가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넣은 멸치 볶음 속의 견과류, 오직 자식의 건강을 위해서 모든 헌신을 다했던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했던 거다. 나는 그런 엄마의 사랑, 멸치가 무척이나 먹고 싶고 그리운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