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성당이 많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온통 성당이 높이 세워져 있다. "또 성당이야"라고 혀를 내두르는 관광객도 많이 봤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는 성당 자체가 유학생활의 큰 힘이 되었다. 하루는 프랑스어 수업을 마치고 절망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저녁 무렵에 길거리를 방황하며 터벅터벅 걷고 있던 찰나, 저녁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하면서도 강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이내 내 마음까지 울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종소리가 울리는 성당에 들어갔고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가끔은 이런 내 얼굴을 보고 먼저 다가오는 프랑스인 신부님과 수녀님도 있었다.
"너 괜찮아? 별 일없는 거야? Ça va? Pas de probleme?"라고 물기도 했고,
"저 십자가 앞에서 함께 기도할까? Est-ce que je peux prier devant la Croix tous ensemble?" 라며 낯선 이방인을 안아주기도 했다.
내가 낯선 땅에 있는 성당에서 이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가톨릭이라는 브랜드 때문일 것이다. 미사라고 일컫는 예배 방식이 전 세계 공통이고, 성당에서 행해지는 모든 혜택을 전 세계 어느 성당에서든지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은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약간 우리나라 현실은 다를 수도 있다. 여러 종교가 얽히며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이 성당에 들어오면 경계부터 하니말이다. 프랑스는 천 년이 넘는 시간 가톨릭 교회가 이 나라의 국교였으니까 종교 Religion 하면 가톨릭 Catholique을 떠올리고 성당 문을 더 활짝 열어 낯선 이를 맞아주는 듯해 보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이런 가톨릭적인 모습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로도 계속 일어난 크고 작은 혁명은 프랑스 가톨릭 교회에 큰 타격을 줬다. 신부님들의 권위주의(성직주의) 모습과 지자체와 결탁되어 벌어진 많은 비리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말로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성경 말씀 곧 진리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시대착오적인 모습이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1905년 라이시떼 Laïcité 헌법을 제정하여 공식적으로 종교와 사회의 분리를 선언했다.
얼핏 보면 종교의 자유, 어떠한 종교에 치우치지 않는 평등함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프랑스 공화국에서는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고 그 종교에 대해 정의도 내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말장난 같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에서 종교 자체를 인정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공화국 헌법 제1조]
프랑스는 불가분적, 비종교적, 민주적, 사회적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또는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서 평등함을 보장한다.
« La France est une République indivisible, laïque, démocratique et sociale. Elle assure l'égalité devant la loi de tous les citoyens sans distinction d'origine, de race ou de religion. Elle respecte toutes les croyances ».
[라이시떼 제1조]
공화국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는 공공질서를 위해 제정된 제한에 의해서만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보장합니다.
« la République assure la liberté de conscience. Elle garantit le libre exercice des cultes, sous les seules restrictions édictées dans l’intérêt de l’ordre public ».
[라이시떼 제2조]
공화국은 어떤 종교도 인정하거나 고용하거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 La République ne reconnaît, ne salarie ni ne subventionne aucun culte ».
프랑스 사회에서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는 지자체마다 연합회 l'Association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공공장소에서는 종교적 상징물인 십자가, 염주 등을 착용하지 못한다.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조차 쓸 수 없다. 프랑스 공휴일 중에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날이 많긴 하지만 이 또한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상징을 드러내는 장식을 설치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 법이 생겨난 시점을 기준으로 모든 종교 건물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프랑스 성당은 물론이고 신부님들이 거주하는 사제관까지 몽땅 다 빼앗겼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임대료는 지불하지 않고 있으나 가톨릭 교회에서 직접적으로 관리를 못한다면 정부의 결정으로 성당 문을 닫게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마지막 혁명이라고 부르는 1968년 5월 혁명은 가톨릭 교회에 또 한 번 큰 타격을 입혔다. 교회에 회의감을 느끼고 절반 가까이 되는 신부님들이 옷을 벗은 것이다. 약 2만 명에 가까운 신부님들이 스스로 사제직을 내려놓고 평신도로 돌아갔다. 여기에는 교회를 현대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신부님 부족 사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당은 백개가 넘지만 신부님은 50명도 채 안 되는 교구 Diocèse 가 대부분이다. 결국 교구는 성당 여러 개를 묶어 통합 관할 구역(본당)으로 만들어버렸고 한 신부님이 약 20개 정도의 성당을 동시에 관리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 성당에 신부님을 파견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빈 건물로 방치하면 정부가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빈 성당을 심심치 않게 부동산에 내놓는다. 이 성당을 구입한 사람들은 보기 좋은 식당이나 호텔로 재운영하고 있다. 아니면 아예 성당을 무너트리고 새롭게 건물을 짓는 경우도 있다. 수백 년 된 성당이 매년 20채 넘게 무너지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재구성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Dame de Paris'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작품이다. 특히 '대성당들의 시대 Le Temps Des Cathedrales'라는 노래는 하늘 높이 치솟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과 그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로 하여금 우리 마음에 여러 감정을 쏜살같이 찌르게끔 한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Il est venu le temps des cathédrales
Le monde est entré dans un nouveau millénaire
L'homme a voulu monter vers les étoiles Écrire son histoire dans le verre ou dans la pierre
<대성당들의 시대> 노래 중..
대성당들의 시대는 무너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 성당은 더 이상 종교적 위안을 주는 공간이 아니다. 그저 문화적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일부 사람들은 혐오시설로 부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추억의 공간으로 여기기도 한다. 프랑스어 중급반 담임 선생님이었던 마담 브리지트 Brigitte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증조할아버지는 만나러 엑상프로방스 주교좌성당에 간다. 그녀의 증조할아버지는 엑상프로방스의 대주교였으며 주교좌성당 지하에 잠들어있다.
내 생각에 프랑스 성당은 생각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건물일 수도 있겠다. 프랑스의 모든 시간이 함축되어 담겨 있는 프랑스 그 자체이지 않을까. 비단 프랑스 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본다. 이방인인 나에게 큰 위안과 신앙생활을 끊이기 않게 도와줬으니까 말이다. 성당에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사라지고 도시환경은 바뀌지는 성당은 그 자리에 그대로 오랜 시간을 버틴다. 그래서 나는 무너지는 성당을 보며 가슴이 아리다. 한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살이를 궁금해하는 한 사람으로서,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 또한 처참하게 무너져 영영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