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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May 17. 2022

외모 지적도, 칭찬도 거절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너 걸어갈 때 뒷모습 잠깐 봤는데 엉덩이밖에 안 보이더라." 업된 엉덩이가 예쁘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내 귀에는 '엉덩이 밖에 안 보이더라'라는 말만 맴돌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최대한 엉덩이가 씰룩씰룩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걸었는데, 이렇게 또 나는 내 몸의 한 부분을 알게 모르게 의식하게 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대한 언급을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외모 지적뿐 아니라 외모에 대한 칭찬도 마찬가지다. 나도 크면서  외양에 대한 말은 숱하게 많이 들었다. 얼굴이 보름달 같다거나 허리가 길다거나 팔다리가 짧다거나 엉덩이가 크다거나.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외모에 대한 말은 머릿속에 단단히 박히게 된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마 타인의 평가를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들으면  부분을 숨기거나 바꾸고 싶고 칭찬을 들으면  부분을 유지하거나 드러내려고 한다. 어느 쪽이나 긍정적이진 않다. 외모 지적은 내가 바꿀  없는  모습을 내가 싫어하게 만들고, 외모 칭찬은 자칫  자신의 가치를 외모와 동일시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모와 몸에 대한 말이 쏟아지는 이 사회에서 나는 외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까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모습을 참 많이도 싫어했고 그래서 내 몸을 많이 괴롭혔다. 극심한 다이어트와 폭식의 반복 끝에 나는 결국 이 지독한 굴레를 내 맘대로 벗어던지기로 했다. 외모 지적을 들었을 때는 최대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법을, 그리고 외모 칭찬을 들을 때는 그 말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연습했다.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 샤워를 할 때, 운동을 할 때, 사진을 볼 때, '내 몸이 이랬으면 좋겠다', '내 얼굴이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순간순간 느끼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순 없지만, 내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획일화된 시선에 위축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배가 왜 이렇게 나왔지, 팔에 살이 왜 이리 많지, 허벅지가 왜 이렇게 두껍지, 다리가 왜 이렇게 짧지, 얼굴이 왜 이렇게 크지, 하고 의식하는 순간 끝없는 자기혐오와 의욕 상실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내 몸이 거울 속에 비쳐도 사진 속에 내 모습이 예뻐 보이지 않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매일 노력한다. 살이 빠져도 살이 쪄도 나는 나임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외모에 대한 언급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도 그렇다. 나와 상대방만 있을 때는 괜찮을 수도 있지만 여럿이 있을 때는 더더욱 조심한다. 한 사람에 대한 칭찬은 곧 다른 사람에게 '너는 그렇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땐 그렇지 않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그 칭찬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가진 나쁜 영향을 준다. '이래야 예쁘다'라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 광고가 길거리에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과한 정도의 예민함이 필요하다. 민낯의 얼굴을 보고 '어디 아파 보인다' 같은 말도 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외모에 대해 상대방이 하루 종일 신경 쓸 것 같은 어떤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집 밖을 나가는 순간 외모에 대한 언급을 하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고 우리가 접하는 매체에서는 이상적인 외모에 대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쏟아내기 때문에 그 흐름에 나까지 입을 보탤 필요는 없다.


  언제나 사회적으로 이상화된 외모 형태는 있어왔다. 그것이 지금처럼 날씬한 몸이냐 아니면 살집이 있는 몸이냐는 상관없다. 지금 유행하는 얼굴이나 몸의 형태가 지나가면 또 다른 형태의 유행이 올 것이다. 다 같이 자유로워지기 위한 내 몸부림은 무의미한 노력일 수도 있겠다. 아니, 무의미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칭찬도 못 하냐고, 예쁜 걸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만은 내가 내 모습을 검열하고 혐오하지 않고, 또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외모에 대한 강박이 더 견고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나 혼자만의 몸부림을 계속해 갈 것이다. 지금은 그저 외모 지적을 듣고 흘려버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적하는 사람에게 무례하다고, 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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