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산책일기를 쓰기로 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산책을 한다.
오래된 습관은 아니다.
근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처음에는 산책을 하기 전에 나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할 일도 많은데, 그냥 책을 몇 줄 더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드시 해야만 할까.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이 흔히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말하듯, 나는 사람은 햇빛을 받아야 산다고.
그런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은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정말 잘 몰랐었다.
오후 4~6시경,
이르면 오후 1~3시 사이에 나갔다 오기도 한다.
직장인처럼, 출근하듯,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묶고, 걷는다. 들판을.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시간,
매일 같은 공간을 다른 생각과 풍경들로 칠하며 유구한 시간을 관찰한다.
그 속에서 언젠가는 사라질 나를 지워내고, 또 채운다.
산책을 나갈 때는 나는 가장 답답한 문제들과 겨루고 있다.
대부분은 이런 문제들이다.
1. 많은 아이디어를 다룰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다.
2. 속도조차 느리다.
쓰고 싶은 글은 많지만 사료를 뒷받침하려 하다 보니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마음에 드는 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작과 중간, 끝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무겁고 어려운 글 말고, 소품처럼 가볍게, 부담 없이, 나의 매일을 기록한 산책일기를 쓰기로 했다.
숨 쉬고 살아 있는 나를 기록하기로 했다.
분명한 사실,
산책을 다녀오면 나는 달라져 있다.
생각도 생명도 자라는 기분이다.
집에 다시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집이 있는 층수를 누를 때, 나는 햇살처럼 밝고 경쾌해진 내 모습과 마음을 본다.
나는 햇살로 인해 달라진다.
나는 햇살을 받고 자란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발음하기까지 조금은 낯설고 부끄럽던 '산책'이란 단어를 자그맣게지만 소리 내어 말한다.
"나 산책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