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사이
오랜만에 어버이날을 맞이해 아빠랑 단 둘이 한 잔 하러 음식점에 갔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만 해도 아빠랑 단 둘이 있는 시간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 어색함의 주요 원인이 대화 속 공통 주제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빠의 이야기는 지루했고, 내 이야기는 잔소리 감이었으니 말이다.
직장을 다니고부터 부쩍 아빠와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사실 술 마시고 난 후 아빠의 레퍼토리는 변함이 없다. 단지 듣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아빠의 ‘라떼’ 이야기가 단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가 아닌, 치열했던 젊은 날의 고생과 가족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읽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빠는 요즘 회사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꼰대로 비춰질까 굉장히 조심한다고 한다. 그 말에 피식 웃긴 했지만,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라 ‘라떼’를 항상 주의하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라떼’를 진심으로 즐겁고 애틋하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딸인 나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나한테는 라떼 얘기 실컷 해도 돼’라며 으스댔다.
그날 아빠는 유난히 신나 보이셨다. 맛있는 밥을 여전히 얻어먹는 딸인데도 나와 밥 먹는 시간이 매우 즐겁다고 말하셨다. 덕분에 나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별 건 없지만, 이렇게 아빠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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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발로통, <Les genêts en fleurs, Avallon>,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