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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GDI 잉디 Feb 21. 2021

08. 내가 회사를 가는 이유

대표님의 도화지 이론

얼마 전 준기님과 대화를 하면서 인상 깊게 들은 단어가 있었다. 

“도화지론”. 

나라는 새하얀 도화지에 여러 가지 물감을 칠해 나갈 것이라는 맥락이었다. 사실 회사에서 나만큼 새하얀 도화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다. 개발이면 개발, 디자인이면 디자인 등등 어느 정도 본인의 분야에서 칠해져 있는 물감이 있는데 나는 특별히 없다. 여태까지 하고 있었던 운영팀의 가맹 업무는 커리어적으로 봤을 때 어떤 물감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회사 안에서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분리해서 나라는 사람을 단독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어떤 명확한 방향성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기회를 잡고 살아오다 보니,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빈 백지상태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올해 초에 OKR을 잡은 것도 이런 상황을 조금은 해소해보겠다는 맥락이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와 회사에 필요한 일을 연결 지어 회사에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들을 결정했다. 그중 한 분야인 P&C에 대한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고 있고, 꽤 흥미로운 분야라고 느끼며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미션 수행기는 앞으로 계속해서 공유할 예정이다.


나처럼 방향성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람에겐 좋은 멘토가 있으면 참 좋다고 느낀다. 준기님께서 그 역할을 다분히 해주시고 있고, 덕분에 생기는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내 도화지에 스케치를 그려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래 하고 있었던 가맹 업무를 파트타이머 분들에게 넘겨드린 후에 난 무슨 일을 했지? 생각이 들다가도, 조목조목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다양한 일들을 했더라. 채용 페이지를 만든다던가, 채용 공고를 올린다던가, 신규 입사자들을 위한 온보딩 페이지를 만든다던가, 파트타이머 분들께 인수인계를 도와드린다던가, 신규 입사자 분을 도와드린다던가 등등. 이것을 물감이 아닌 스케치라는 워딩을 쓴 이유는, 나 스스로 아직 탐색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여러 가지를 그려보고, 아니면 지우면 되니까. 나한테 맞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때 색을 칠하기 시작해도 되니까.




준기님의 도화지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다 이것이 곧 내가 회사를 가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새하얀 도화지에 그려질 그림과 색채가 나도 궁금하고, 서툴지만 열심히 그려보려고 하는 회사에서의 내 모습이 썩 나쁘지 않다(아직 100% 마음에 들진 않는다). 겉으로 보면 회사라는 공간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의 성장과 미래의 커리어를 하나씩 그려볼 수 있는 양성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내 삶의 본격적인 미래를 만드는 첫 관문 같은 시간을 페이히어와 함께해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해서 감사할 따름이다. 내 도화지에 그려질 그림들이 못생긴 그림이더라도, 예쁘지 않은 색감이더라도 나에겐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고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항상 예쁜 그림일 수만 있을까!


준기님께서 내가 가진 도화지에 혹여나 그림을 망칠까봐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고 하셨다. 매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끔은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을텐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도화지를 망치는 일일까?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경험이든 얻어가는 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설령 그것이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 나름대로 배워가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수행할 다양한 일들이 어떤 기회로 이어질지는, 나도 계속해서 기대해보고 있다.




어제 영화 ‘소울’을 봤다. 인생에 거창한 목적이 없더라도, 매 순간순간 사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내가 왜 아침마다 졸린 눈을 뜨면서 회사에 갈까 생각을 해보면, 내 무의식 속에 회사가 주는 사소한 행복이 깊이 내재되어 있어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페이히어라는 조직에 구성원으로서 함께할 수 있다는 행복, 일을 할 수 있다는 행복, 좋은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행복,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는 행복,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행복,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행복 등등. 익숙할수록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소중한 익숙함들이 내일도 회사를 갈 수 있는 힘이라고 느껴진다.

영화 <소울> 중에서.


익숙한 행복에 도화지 이론을 얹어, 회사에서의 하루하루를 더 예쁘게 만들어 가야겠다. 순간순간에 더욱 최선을 다해야지. 내일의 회사가 기다려진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kjmin1997/222236586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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