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에 앉아서 첫째 회고를 적어 내려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빠르게 가는지. 어느덧 또 흘러간 지난 두 달을 돌아보고 있다. “나 오늘 뭐했지?”는 내가 참 많이 하는 대사인데, 두 달간 내가 뭐했나 싶다가도 남겨 놓은 흔적들이 이러한 생각들을 조금은 해소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달력을 넘겨가며 지나간 일정들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11월에서 1월까지는 회사 관련 일정들이 별로 없었는데, 1월 말부터는 회사 일정들이 내 달력을 꽤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러 회의들, 면접, 회고, sync, 인터뷰, 박람회 등 다양하고 재밌었던 일정들이 두 달을 꾸며주었다. 돌아보면 재미없었던 일은 없었다. 하나같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덕분에 첫째 회고 때보다 둘째 회고를 쓰는 지금, 아주 조금은 성장한 내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업무 회고]
1월부터 3월까지 내가 무슨 일을 했나 봤더니,
우리 회사 소개 페이지를 만들었고, 몇몇 면접에 참여했고, 채용 공고를 만들어 게시했고, 파트타이머 분들에게 인수인계를 도와드렸고, 신규 입사자 분들을 대상으로 온보딩 페이지를 만들었고, 박람회에 나갔고, 가장 최근엔 업계 경쟁사 자료를 만들었다.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어 좋다.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배운 점도 많지만 마냥 재밌기만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늘 걱정이 앞섰고, 회사에서 나를 믿어주시는 만큼 나도 회사를 위해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잘하고 싶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일인데. 한 번에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했고, 그렇게 하면 결과물과 상관없이 후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회사는 ‘열심히’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한 조직일 텐데, 잘하기 위해선 열심히 하는 시간적인 투자 비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상 깊었던 일들을 꼽아보자면,
신선했던 경험은 > 박람회 참가
페이히어는 저번 달에 코엑스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창업 박람회에 참가했다. 부스 운영을 위해선 현장 인력이 필요했는데, 나도 풀타임 인력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행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도 했고, 좋아하기도 해서 박람회 업무를 리딩해주신 제민님이 나도 인력으로 함께 넣어주셨다. 행사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부스를 직접 운영해 본 경험은 없어서 박람회 전까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우리 회사의 프로덕트를 알리는 것이 1차 목표였기 때문에, 박람회를 방문해주시는 분들에게 우리 회사의 제품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홍보하는 역할이 필요했다. 돌아보니 내가 걱정이 되었던 건, 내가 우리 회사의 프로덕트에 대해서 100%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여태껏 해왔던 업무들이 프로덕트에 대해 깊이 몰라도 가능한 업무여서 공부를 미뤘던 것도 있지만, 사실 이건 핑계일 뿐이지 않았을까. 미리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봤더라면 그렇게까지 걱정은 안했을 텐데. 박람회에 임박해서 급하게 벼락치기로 우리 제품을 공부했고, 행사하는 동안 많은 분들께 설명을 해드리면서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의 제품에 관심을 가져주신 다양한 분들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었다는 점, 내가 직접 우리 제품에 대해 설명했다는 점, 각자의 역할을 알아서 묵묵히 수행하며 동료들과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든 것 같다는 점이 모두 의미 있었다. 회사의 이름을 걸고 직접 진행했던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 회사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박람회 현장에서만 일을 함께했던 한 명의 인력일 뿐이었지만 박람회 참가의 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지켜볼 수 있었고, 이번 행사를 회고하며 다음 행사에 대한 전의를 다지는 시간들에 함께할 수 있어 참 감사했다.
힘든 만큼 뿌듯했던 박람회 현장
애정이 갔던 경험은 > 회사 소개 페이지 만들기, 온보딩 페이지 만들기
내가 직접 기획하고, 고민하고, 결과물을 만든 일은 크게 이 두 가지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단독적으로 진행한 일이다 보니 더욱 애정이 가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일을 하며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고민을 깊이 할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회사 소개 페이지를 만들면서 우리 회사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프로덕트를 만드는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우리가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가 무엇인지 등을 고민했다. 내가 우리 회사를 완벽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관찰하며 파악한 우리 회사를 텍스트화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추상적인 영역을 다루는 작업이었는데, 페이히어라는 회사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동료들에 대해 더 깊이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회사 페이지 일부
온보딩 페이지는 신규 입사자들을 위한 페이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신규 입사자들이 우리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마땅히 읽을 자료가 없다는 문제점에 착안해서 진행한 일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처음 왔을 때 궁금해할 요소들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보고, 찾아보기도 했다. 새로운 분들이 오셨을 때 나한테 질문 주셨던 점들을 기억해 놓았다가 반영하기도 하고, 기존에 있는 구성원에게는 당연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을 요소들을 담으려고 했다. 앞서 언급한 회사 소개 페이지를 만들 땐 겉에 보이는 회사에 대해 고민을 했다면, 온보딩 페이지를 만들 땐 내부 운영 측면에서 많이 관찰하려고 했다. 입사 첫날 체크해야 할 사항들, 우리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 회사 생활을 하며 알아두면 좋을 팁들, 팀별 가이드라인 등을 준비하면서 파편적이기만 했던 회사의 시스템들이 하나로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회사 구성원들에게 결과물을 공유했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보완이 되면 좋을 내용들도 잘 말씀해주셔서 더 탄탄한 결과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리를 잘해줬다고 말씀해주신 동료들의 말씀 덕분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
온보딩 페이지의 첫 시작
그 외의 크고 작은 경험들 >
유명하거나 잘 나가는 회사들을 보면,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 적이 있다. 그 회사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즐거움이나 힙함이 회사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달까(정작 실상은 그렇지 못할 지라도). 회사가 즐거워 보이는 건 회사 문화의 반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회사가 더 매력적으로 보일까에 대한 고민도 P&C 영역에서 해볼 수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이 들어 흥미로운 미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할 고민들이 새로운 미션이 되고, 그것의 수행이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인 회사처럼 보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마음가짐 회고]
지난 회고 때와 비교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회사에 가고 있을까. 하루하루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나 자신이 뭐가 달라지고 있는지 보기가 어려워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오랜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만의 성장 궤도에 나름대로 발을 살포시 올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다. 불을 지펴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진 않지만, 적어도 그 불을 지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회사에 갈 때마다 장작을 하나씩 채워 넣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를 놀라게 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써야 하지만, 아직 나에겐 거쳐야 할 시간들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시간들이 모여 더 멋진 나 자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업무 이외에 내 개인적으로 더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고민도 해보고 있다.
P&C 분야를 다루게 되면서 사람과 문화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나는 과연 좋은 사람이자 동료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회사는 일을 하는 조직이고, 일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지만, 사람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인 만큼 사람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일에 대한 성장과 더불어서, 나라는 사람에 작은 변화를 얹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좋은 동료의 바운더리 안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