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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 Oct 23. 2021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게 노브라일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치곤, 너무 내 이야기 같다.'

 도아의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치곤, 너무  이야기 같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브라 유목민이에요.




 저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부터 란제리라는 아이템을 좋아해서 란제리를 공부했고, 자연스럽게 속옷 회사에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속옷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고, 첫 정규직 계약 역시 우리가 만난 속옷 회사에서 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이런 제가 브라 유목민이라니 정말 웃기지 않나요? 저는 제가 느꼈던 아이러니한 브라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20대 초반, 제 친구들 사이에 유행하던 속옷 브랜드는 '에메필'이었어요. 에메필은 예나 지금이나 소위 '영혼까지 모아준다.'라는 초모리 제품이 가장 유명하잖아요. 처음 초모리를 입었을 때 뿅 하고 튀어나갈 듯한 인위적인 실루엣에 너무 민망했지만, 당시엔 그런 브라가 유행이었고 그게 예쁜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유방, 옆구리, 등살까지 모두 끌어당겨 가슴을 단단하게 만들다 보니, 집에 와서 브라를 벗으면 엄청난 해방감이 몰려왔고 제 몸에는 선명한 브라 자국이 남았어요. 심지어 더운 여름에 땀이라도 나면 브라 라인을 따라 벌건 상처가 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깊은 가슴골과 봉긋하게 푸시업된 가슴이 예쁘다!'라는 당시의 시선들 때문에 몸에 무리를 주는 브라를 꽤 오랜 기간 입었던 기억이 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대 중반엔 노와이어와 노패드, 가벼운 형태의 브라렛이 유행했죠. 대부분의 브랜드는 "가슴을 옥죄이는 두꺼운 패드와 와이어, 너무 답답하지 않나요?"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마케팅을 했고, 저 역시도 그런 디자인 기획서를 썼어요. 브라렛 유행 초기에는 연약한 레이스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라, 모델의 사진을 보면 눈길 가는 디자인과 편안해 보이는 착용감 때문에 소비 욕구가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브라렛을 입는 순간, 환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어요. 브라렛은 제 가슴을 전혀 받쳐주지 못했고 밑 가슴을 잡아주는 힘이 없어서 팔을 들 때 브라렛이 니플까지 끌려 올라와 당황했던 경험은 너무 충격적이라 잊히지도 않아요. 게다가 레이스와 어울리는 얇디얇은 어깨 끈은 내구성 또한 떨어져서 저한테 레이스 브라렛은 그저 '예쁜 니플 가리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했을까? 아니 절대. 비싸면 더 비쌌지, 결코 저렴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브라렛은 편한 거야!'라는 타이틀로 제품을 기획하던 저는, 제가 거짓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기능성에 셀링 포인트가 맞춰진 골지, 심리스, 프리컷 형태의 노후크/노레이스 브라렛에 다시 도전했어요. 여전히 가슴을 받쳐주진 못했지만, 레이스로 제작된 브라렛에 비해 잡아주는 힘은 생겼더라고요. (레이스 브라렛에 하도 데여서, 브라렛이 몸통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거지만...) 그렇지만 후크가 없는 브라렛은 입고 벗는 게 운동으로 느껴질 정도로 힘들어서 결국 손이 가지 않았어요. 사실은 제가 편한 브라렛에 정착하겠다며 원래 입던 와이어 브라를 모두 버렸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와이어 브라를 결제하고 있더라고요.. 결국은 불편했던 거예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만들어졌던 제품은 제게 또 다른 차원의 불편함을 줬어요.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의 결정적 확신은 회사의 매출 그래표였어요. 아무리 브라렛이 편하다고 말해봤자 회사 매출을 꽉 잡고 있는 건 푸시업 브라였고, 당시에 우리가 볼륨을 채우는데 포커싱한 제품 라인을 론칭한 게 현실이었으니까요. 론칭은 성공적이었지만 처음으로 '난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 탈브라/노브라의 시대가 열렸어요. 이번에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사랑해야 돼."라고 말하더군요. 유명 펀딩 사이트에서는 니플만 가리는 형태의 '패드형 브라'가 높은 펀딩률을 기록했고, 브랜드에서는 패드가 부착된 티셔츠나 원피스 등 브라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외출복을 출시하고 있어요.

 언뜻 보면 편안해 보이기도 해요. 브라를 입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제 생각에 그들은 브라의 근본적인 기능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브라의 역할이 과연 니플을 가리는 것뿐일까요? 가슴이 큰 여성이 브라를 하지 않으면 걸을 때마다 가슴이 흔들리면서 무게감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가슴이 쳐진 여성이 브라를 하지 않으면 밑 가슴과 갈비뼈 사이에 땀이 차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간혹 노브라가 '탈코르셋'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어요. 초모리처럼 가슴을 억압하는 형태의 브라를, 레이스 범벅이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브라렛을 벗는 게 탈코르셋이라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노브라' 자체가 탈코르셋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치마를 입고 싶으면 치마를 입고 바지를 입고 싶으면 바지를 입는 것처럼 브라는 기능성 기반의 의복 형태일 뿐이니까요.


저는 여전히 노와이어 제품보단 와이어 제품이 편하고, 가슴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는 몰드형 브라에 안정감을 느끼고, 간편하게 탈착이 가능한 후크 제품이 좋아요. 그리고 전 노브라가 정말이지 너무너무 불편해요! 앞으로도 저는 제 선택이 시대의 유행에 맞든 아니든, 제가 좋아하는 속옷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발적 브라 유목민이 되려고 해요. 도아의 말대로 '상업적'인 메시지에 휘둘리는 것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건강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음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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