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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 Jul 20. 2022

도배를 하는데 눈물이 났다

18년 만의 도배, 그건 어떤 의미였을까

아침부터 화가 잔뜩 났다. 엄마가 해준 밥에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아침부터 잔뜩 골이 난 엄마의 하소연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도배를 하는 날이었다. 늘 이사를 가고 싶다 말하던 엄마의 바람은 아빠라는 벽에 늘 부딪혔다. 엄마는 거주 목적의 집을, 아빠는 투자 목적의 집을 원했다. 그 같고 다른 두 집 사이에서 우리는, 18년째 한 집에 살았다. 물론 18년이나 이어진 데에는 청약이 당첨되었던 집을 멋대로 팔아버린 엄마의 잘못도 있었다. 그 집의 값은 1년 새 두 배나 뛰었고, 한동안 우리 집에서 '이사'는 금기어였다.


엄마는 더 이상 이사를 바라지 않았다. 바랄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도배를 했다. 물론 아빠와의 상의는 없었다. 도배하고 싶다는 말을 백 날 쯤 들었을까, 엄마는 대뜸 내게 전화해 네 방은 무슨 색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도배 아저씨는 수요일에 올 것이라고 했다. 아빠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을 예상한 엄마가 선도배 후전투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늘 아침,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거실과 내 방의 가구를 모조리 베란다로 내어놓는 것 말고는.


엄마는 눈 뜨자마자 화가 났을 것이다. 도배가 무슨 큰 잘못이라고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나? 엄마는 월요일부터 눈치를 봤다. 아빠한테 말할까? 하다가도 아니야, 이번에 뭐라고 하면 나 진짜 가만 안있어, 하고, 그러다가도 아빠 눈 앞에 잘 깎은 과일을 내밀었다. 평소 대화가 없는 우리 부모의 관계를 되돌아보자면 그건 명백히 엄마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나가기만을 기다리다 거실과 부엌의 집기와 가구들을 모두 옮겼다. 큰 딸은 자고 있었고, 작은 딸인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정말 다들 너무하다며 하소연을 했다. 내가 뭐 죄지었냐고, 내가 안하면 다들 아무것도 안도와준다고, 내가 집에서 노는 여자도 아니고 일하는 여잔데.... 하면서, 늘 들어왔던 레퍼토리 그대로.


난 아빠와 상의없이 도배를 결정한 엄마에게, 도배 하나도 마음 놓고 못하게 하는 아빠에게 동시에 화가 났다. 그 사이에서 가장 마음이 불편한 건 나였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는 대부분 나였다. 얼른 방에 있는 가구들을 정리하라며 화내는 엄마에게 나는 더 크게 화를 냈다. 적당히 좀 하라고, 왜 이렇게 아침부터 짜증이냐고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마주한 엄마의 표정은, 너무 약한 여자였다. 엄마는 약했다. 허리디스크가 있어 가구를 들어서도, 들 수도 없었다. 엄마는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노랗게 물들어버린 벽지로는 뭘 해도 태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뭐든 했다. 소파를 들어 옮겼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도배를 의뢰했다. 약한 엄마는 누구보다 강했다.


잔뜩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가구를 옮겼다. 엄마가 무거워서 옮기지 못한 것들을 나는 옮길 수 있었다. 그것들은 사실 무겁지 않았다. 나는 전자렌지와 다이, 오븐 같은 것들을 옮기며 엄마에게 소리 지른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함께 내려놓으려 애썼다. 엄마의 표정이 너무 깊게 마음에 박혔다.


심호흡을 하며 출근길에 나섰다. 버스에서 내리다 말고 넘어졌다. 보폭이 작은 치마에 비해 넓게 걸으려다 일어난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 넘어진 건 너무 오랜만이었다. 주변,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들이 모두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보고 걸었다. 이상했다. 마음이 오히려 시원했다. 벌을 받았구나, 싶으면서 죄책감이 누그러졌다. 괜히 엄마에게 나 완전 심하게 엎어졌다, 고 어리광을 부렸다. 미쳐버리겠다며 오늘 하루 조심하라는 엄마의 카톡에 안심이 됐다.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이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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