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누구 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도아라고 합니다.
30대이고, 여성이고, 경기도에 살고, 서울에서 일해요. 산책과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자주 와인을 마시고, 대화의 희열을 좋아합니다. 어디선가는 존재감 없이 차분하고 신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가, 언젠가는 한없이 명랑하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도 싶어요. 자유가 꿈이지만 개인의 자유의지를 그다지 믿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인간은 유전자와 자라난 환경 안에서 99%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걸 냉소하는 건 아니고 1%의 노력으로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언제나 부러워하는 편입니다. 저는 (경제적) 안정이 언제나 삶의 최우선이었던 부모님 아래서 자랐습니다. 대출이 자산이라는 걸 몰랐던 아빠는 제가 10살이던 해에 빚 없이 현금으로 아파트를 두 채나 샀어요. 대단한 자수성가 사례이지만 한편으론 슬픈 일입니다. 돈은 누구에게도(심지어 은행에서도) 빌려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아빠의 일화를 생각하면 아빠가 얼마나 경직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왔을지, 돈이 아빠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을지, 그 세상이 얼마나 각박했을지 그려지는 것 같거든요. 엄마는 대장부 같은 사람입니다. 아파트를 사고 얼마 뒤 회사를 그만둔 아빠를 대신해 제가 어른이 되도록 집안 살림을 가꾸고 돈을 벌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 압력밥솥에 적은 양의 밥을 하고, 바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뜨겁게 먹을 수 있도록 그릇에 옮겨 담고, 퇴근 후 저녁에 돌아와 새 밥을 지어요. 저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30대가 된 지금도 모르겠어요. 아마 평생 모를 것 같아요.
하지 말라는 게 더 많았던 보수적인 아빠와 무엇이든 하라던 대장부 같은 엄마 사이에서 저는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는 채로 자랐습니다. 그 어린아이는 그대로 내가 되어 여전히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대신 꿈은 있습니다. 드라마 대본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 말을 앵무새처럼 하면서 저는 오늘도 회사로 출근합니다. 관심 없는 데이터 지표를 보고 성과를 개선할 재미없는 마케팅 플랜을 짜요. 이사를 앞두고는 수도권 아파트를 펼쳐놓고, 역세권인지, 주변에 영화관이나 도서관이나 공원이 잘 마련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비주류로 살고 싶다고 말하곤 언제나 주류에 끼어있어야 안심이 돼요. 진짜 비주류로 살아갈 용기와 확신이 제게는 없습니다. 언젠가 생기겠지, 하면서 늘 뒤로 미뤄왔어요.
도파민과 무기력이,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이 한껏 엉켜 섞여 있는 도심에서 저와 같은 3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누구라도 붙잡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이 글을 보는 누구든, 우리 자주 편지하면서 지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