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이지 않은 채로 살아갈 순 없을까
서울엔 비가 와요. 한없이 늘어지고 싶은 날이에요. 좋아하는 잠옷을 입고 침대에 대자로 벌렁 누워서, 최근 푹 빠진 냉동 블루베리와 단백질 쉐이크 조합을 맘껏 퍼먹고 싶어요. 현실은 사무실 새하얀 책상에 앉아 빗소리가 멈추길 기다리고 있죠.
퇴근하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빨래를 할 거예요. 아침에 돌린 빨래를 건조기에 넣는 걸 깜빡해서 젖어버린 빨랫감만큼 마음이 무거워요. 고작 2인분의 빨래인데 빨고 갤 건 왜 이리 많은지, 수북이 쌓인 옷과 수건 더미를 보다 화가 날 때가 많아요. 쌓여있는 빨랫감만큼, 내 삶도 어딘가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옷을 입었으면 깨끗이 빨아 걸어두는 것,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하고 밥상을 닦아두는 것, 그게 바로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생활’인데, 저는 생활은 몽땅 외주를 맡기고 일과 자아 탐구, 만남과 시도에만 에너지를 써요. 쌓인 빨랫감은 내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방증으로 보여요. 그게 가끔 나를 화나게 해요.
이 화를 곱씹어 살피다 보면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저는 이미 의학적 초기 노산 나이를 지났고, 조금 더 지나면 (임신 시)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어 남들보다 더 많은 검사와 우려를 감당해야 할 거예요. 내 빨랫감 위에 아기의 빨랫감과 울음소리가 더해진 광경을 생각하면, 그건 여전히 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희생하기 싫어서나 내가 너무 중요해서가 아니라 대학 졸업 후 쌓아온 내 일, 관계, 내 세상이 이제야 마음에 들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선사할 기쁨과 사랑, 거기에 세트로 따라붙는 고통과 역경이 아직은 궁금하지 않은데 ‘생물학적 노산’이라고, 의학이 못 박아둔 나이 코 앞에서 자꾸 조급해져요. 세상이 내게 묻는 것 같아요. 아이 낳을 거야, 말 거야. 결혼할 거야, 말 거야.
애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노산이라는 나이가 점점 다가와 불안하다고. 이런저런 배려 섞인 말을 그가 했던 것도 같아요. 말은 기억나지 않고, 이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몫이겠구나 싶었던 감정이 떠올라요. 제게 필요한 건 배려가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자고 해주길 바랐나, 아니면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우리 둘이 살자고 해주길 바랐나, 잘 모르겠어요. 이건 내 몫이면서 내 몫만이 아니기도 하니까.
책 <이토록 완벽한 불균형>을 읽고 있어요. 세계 정상급 등반가이자, 국제 NGO 기구 창립자이자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마이카 버하르트(Maika Burhardt)의 책이에요. 맨몸으로 빙벽을 오르고 상을 타고 국제기구를 창립했던 그녀가 두 아이를 출산한 뒤 겪는 기쁨과 분노, 사랑과 외로움을 담고 있어요. 마이카는 39살에 아이를 가진 뒤 지금껏 그녀가 만들어온 세상으로부터 소외됨을 느껴요. 더 이상 위험하게 산을 타서는 안 된다고 지레짐작하는 지인으로부터, 아기를 돌보느라 산을 못 타는 거냐고 놀리듯 되묻는 동료로부터, 마이카에게 협찬 된 장비를 착용하고 여전히 산을 오르는 남편으로부터. 두 가슴에 젖을 물린 채로 집안 소파에 누워있는 마이카와 달리 같은 직업을 가진 남편 피터는 승승장구해요. 아이를 낳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게 설산을 오르고 등반가 모임을 가져요.
마이카는 자신이 삶에서 내내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이었다고, 그래서 나는 다를 줄 알았다고, 그래서 이 ‘전형적인’ 집안 풍경을 참기가 더 어려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해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게 산을 타는 일보다 훨씬 기쁘고, 보람 되고,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지만, 산 위의 저 자리 역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고 느끼는 거죠. 저는 출산을 결심하기도 전부터 마이카처럼 말하는 저를 봐요. 일하는 세상에 100% 있지도, 육아하는 세상에 100% 있지도 못해 반으로 찢어진 마음을 느껴요. 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겠죠. 수천 년, 아니 수만년간 많은 엄마가 그래왔던 것처럼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면서, 아이를 낳기 전 사랑했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둘 거예요. 그 순간을 때로는 간절히 바라고, 때로는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요. 하고 싶은 게, 사랑하는 게 너무 많아서, 아직 내려 둘 준비가 안 돼서. 저는 아직 이루고 싶은 게 많아요. 드라마 작가가 되어 현장을 누빈다든가,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한 달 살기를 한다든가, 호기심이 이는 사람에게 선뜻 DM을 보내 커피를 마시고 작당 모의를 꾸린다든가, 밤새워 와인을 마신다든가. 다행히도 아직 제 옆엔 레퍼런스가 되어줄 멋진 언니들이 많이 있고 그들을 보면서 조급할 필요 없다고 안도하곤 합니다. 나는 아직, 고작 빨랫감에 화내도 되는, 열려있고 창창한 나이라고요.
언젠가 이런 고민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결혼하든 안 하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어떤 선택들이 제 삶을 통과하고 말겠죠. 언젠가는 누군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와 만들어가는 세상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며 바라 마지않다가, 언젠가는 글과 꿈 이야기를 하며 밤새워 술을 마시곤 어지러운 머리 대신 택시를 붙잡는 삶이 내 것이라 하면서, 생각이 날 때마다 주변에 물을 거예요.
결혼 하니까 어때? 어쩌다 결혼하게 됐어?
아이 낳으니까 어때? 어쩌다 아이를 낳게 됐어?
어때요? 어쩌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됐어요?
2025. 9. 24
그새 비가 멈춘 망원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