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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화 Dec 26. 2023

의사 선생님 말을 흘려 들었더니 생긴 일

"약 먹는 동안 술 드시지 마시고 충분히 휴식해 주세요."

"장염이라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피하셔야 합니다."


아파서 데구루루 구를 땐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했던 나는 병원 밖만 나오면 제멋대로 환자가 된다. 평소 술은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금주에 대한 처방은 잘 지키나 장염이 걸릴 땐 조금만 나아도 먹고 싶은 거 마구 먹곤 한다. 그리고 또 배탈을 반복하는 나는 아플 때마다 고통을 까먹는 금붕어가 된다. 그러다 이번에 크게 데었으니...


안경잡이로 산 지 14년 차 나는 안경 없이는 집도 찾아 기지 못할 정도로 눈이 안 좋다. 게다가 안구건조까지 있어 렌즈를 낄 땐 몇 시간만 지나도 눈이 뻑뻑하고 답답해진다. 한참 꾸미고 싶은 나이인데 렌즈를 낀다는 게 작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다 올해 4월 라식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내가 간 곳은 환자가 아닌 고객이라 불리는 공장형 대형 눈 수술 병원이다. 내 눈만 말짱히 수술된다면 어떤 병원이든 상관없었다. 드디어 안경을 벗을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무척 설레었다. 검사를 해보니 라식, 라섹은 안 되는 눈이라고... 이대로 살아야 하는지 절망에 빠질 뻔하였으나 렌즈삽입술은 가능한 눈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당일 수술을 결정하곤 온갖 상상의 나래에 빠졌다.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시력이 평균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쩌나...'


수술만 잘 되면 무엇이든 하겠단 내 다짐은 아파서 구를 때와도 같았다.


수술대에 올라간 다음 아이처럼 세상 간절한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말을 건넸으니...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수술만 잘 되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게요란 마음으로 두 손을 꽉 쥐곤 수술에 들어갔다.


회복실에 누워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감사한 마음 가득 담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수술 후 설명을 들으러 갔다.


"눈 절대 만지시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병원에서 보호 렌즈와 의료용 테이프 각종 안약을 처방해 주셨다.

앞이 뿌연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했다.

그래도 수술이 잘 된 것만큼 기쁜 소식이 없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넣고 자려는데

보호 렌즈 그리고 눈 주위에 붙은 테이프가 무척 불편한 게 아니겠는가.

한참을 뒤척이다 도저히 잠이 안 와 테이프를 편안하게 붙였다.


어차피 자면서 눈을 만질 일도 없을 테니 꼼꼼하게 붙일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사건은 새벽에 일어났다 눈이 너무너무너무 아파서 절로 눈이 떠졌다.

충혈이 된 상태로 눈물이 주룩주룩 나니 무언가 잘못된 것이었다.

어렴풋이 떠올려 보니 자면서 내가 눈을 찌른 기억이 났다.


아뿔싸...

보호렌즈를 제치고 눈을 만진 것이다.


그로부터 7개월이 된 지금 수술은 무척이나 성공적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재발성 각막미란이란 안과 질환을 얻게 되었다. 눈이 약해진 상태에서 오염된 손으로 눈을 찌른 것이 원인이었다. 각막미란은 각막 상피 세포가 지속적으로 박리되는 질환으로 관리가 조금만 소홀해져도 아침에 눈을 뜰 때 극심한 고통으로 하루를 맞이하게 되는 병이다.


재발성이란 말이 붙은 만큼 수시로 각막에 상처가 났다 말짱해졌다 하는 골치 아픈 병.

그래도 관리를 잘하면 발병 주기가 더디긴 하나 지금과 같이 건조한 계절엔 재발하기 무척 쉽다. 이 글을 쓰는 어제 그러니깐 크리스마스 아침을 각막미란으로 맞이했다. 평소보다 극심한 통증에 눈물이 주룩주룩 내렸고 눈이 땡땡 부었다. 연 병원도 없는데...


통증으로 절로 눈물이 났다가 의사 선생님 말을 제대로 안 들은 내가 바보 같아 서러워 눈물이 났다가 서글퍼서 눈이 땡땡 부었다.


"눈을 절대로 만지시면 안 돼요!"


어쩌면 나는 눈을 절대로 만지면 안 된다는 말을 별 일 있겠어? 하며 가벼이 넘겼을 수 있다. 평소 배탈이 났을 때도 감기에 걸렸을 때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했던 습관처럼 말이다.


수술대에서 느낀 간절한 마음처럼 그날 선생님 말을 마음속 깊이 듣고 눈을 꽁꽁 싸매었다면

답답하고 하기 싫은 것 하루만 참았더라면

지금쯤 이런 일은 없었겠지?


이 글을 보는 분들이라면 부디 의사 선생님 말을 가벼이 흘러 듣지 않으시길 바란다.

배탈도 감기도 다른 질병도 잠깐 참고 금방 나아서 더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게 놀면 되니깐!

의사 선생님 말을 가벼이 들은 자에겐 내가 각막미란으로 고통받듯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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