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은부드러워 Apr 25. 2019

도쿄라는 심플한 다양함

휴가와 주말을 이용하여 4일간 일본 도쿄를 다녀왔습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사고의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무기력한 느낌이랄까요. 간단히 머리를 식힘과 동시에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자 가까운 도쿄로 향했습니다.


복잡하게 얽혀버린 사고의 실타래를 풀기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자유롭게 떠나는 여행입니다. 30이 넘어서는 머리가 꽉 막힌 것 같은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새로운 사고방식의 적용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산뜻한 스마트함도 느껴 본 지 오래입니다. 그럴수록 뭐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죠.  



한국인이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도쿄는 디자인, 패션, 미술 등 예술은 물론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글로벌하게 손꼽히는 대도시입니다. 서울의 다이나믹함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 맛을 낸 것이 도쿄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맞을 것 같습니다. 서울은 지나치게 다이나믹한 반면 글로벌한 다양성은 부족한 편입니다.


이번 도쿄 여행을 통해 가장 크게 놀란 부분 역시 도쿄의 "풍부한 다양성"에 있었습니다. 시부야, 신주쿠, 오모테산도, 긴자 등 도쿄를 상징하는 각 사이트가 품고 있는 정서적인 다양성은 물론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인종, 음식, 브랜드, 리테일 등의 소프트웨어적 콘텐츠도 매우 다채로웠습니다. 다양한 컨셉의 편집숍, 장인정신이 묻어 나오는 카페, 오타쿠적 기질의 굿즈 샾 등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유형의 컨셉이 넘쳐났습니다.  



3박 4일간의 도쿄 여행을 통해 보고 느낀 다양한 인사이트를 3회에 걸쳐 게재할 예정입니다. 조금은 비즈니스적인 관점의 접근을 통해 도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고 또 어떤 방식으로 도쿄를 체험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담을 수록할 예정입니다. 그중 첫 번째 화는 도쿄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집중함으로써 나오는 다양함


다양한 개성의 발로는 다양성에 대한 추종이 아닌 한 가지 분야에 대한 오롯한 집중입니다. 도쿄의 버라이어티함이 뚜렷하게 "인식"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집중된 화력에 있었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입니다. 다양한 것을 섭렵하기보다 한 가지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뚜렷한 다양성을 가져오게 됩니다. 바로 집중함으로써 나오는 다양성입니다.



오로지 한 가지만 파는 가게들.


요즘 도쿄에서 가장 핫 한 곳은 시부야구의 오모테산도입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물론 개성 많은 편집숍과 장인정신의 카페들도 모여 자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다가 하시라는 숍을 발견했습니다. 하시는 한국어로 젓가락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젓가락만 파는 가게입니다. 도쿄에서도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오모테산도 한 복판에서 젓가락만 파는 가게의 기개에 매우 놀라고 말았죠.



젓가락 샾 하시에는 점심부터 여러 명의 관광객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의 젓가락을 둘러보는 사람들 때문에 몸을 최대한 굽혀가며 구경해야 했습니다. 하시에 들어가자 놀랐던 부분은 단연 압도되는 젓가락의 종류와 양이었습니다. 가게 전체를 매우는 다양한 종류의 젓가락과 거기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나무 냄새는 서정적이면서도 신기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젓가락의 분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초밥용, 라멘용, 돈가스용 등 사용 출처에 따른 분류와 애도 시대의 젓가락, 근세 시대의 젓가락 등 역사에 따른 분류, 원목과 플라스틱 등 재질에 따른 분류 등 주제와 컨셉에 따라 젓가락이 다양하게 분류되고 구획되어 있었습니다. 확실한 주제에 따른 상품 분류는 주제에 걸맞은 고객을 끌어들입니다. 저 역시 라멘을 좋아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라멘용 젓가락 앞을 서성였습니다.


하시 샾의 또 다른 매력은 젓가락에 대한 스토리텔링입니다. 젓가락의 원산지와 원산지가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젓가락이 갖는 의미 등을 젓가락과 함께 팔고 있었습니다. 제품에 대한 스토리를 제품과 엮어내면서 젓가락에 대한 브랜딩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가격은 평균 30,000원 선으로 꽤 값이 나갔지만 관광객들은 쉽게 돈을 꺼내 들었습니다. 확실한 컨셉과 스토리텔링이 소비자의 계속적인 지출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시의 내부풍경


도쿄에는 하시와 같이 한 가지 분야에 특화된 상점이 많습니다. 도쿄 남부의 츠키치 어시장은 도쿄의 수산물 통로로 관광객들이 꼭 한번 찾아가는 유명관광지 입니다. 참치해체쇼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그곳에서 유난히 제눈길이 멈춘 곳은 어식용 칼만 파는 칼 전문 가게 입니다.


사실 모든것이 일본어로 되어있어 정확한 정보를 얻진 못했지만 유난히 남다르게 보였던 부분은 하시의 젓가락과 동일하게 세밀한 용도에 따라 칼의 구획을 지었다는 점 입니다. 매우세밀하게 초밥용과 참치용등 고기의 어종에따라 매우 세밀하게 분류되어있습니다. 그 집요함과 장인정신에 또한번 놀라버렸죠.


츠키치 어시장에 칼만 파는 가게.



장인정신이 묻어 나오는 카페들


도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는 카페입니다. 장인정신이 극도로 묻어 나오는 카페야 말로 이곳이 일본이구나 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가장 경험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오모테산도의 카페 스트릿은 개성 넘치는 카페가 모여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카페거리입니다. 블루보틀, 키츠네, 스타벅스, 등의 글로벌 컴패니부터, 마루야마, 오모테산도 등 싱글 오리진 카페 등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카페 마루야마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지인 몇 분의 소개를 받아 오모테산도의 마루야마 커피를 방문했습니다. 마루야마 커피는  세계대회 검증된 원두를 직접 공수하여 그중 신선도 높은 원두만 당일 사용하고 있는 개인 카페입니다.  싱글 오리진의 경험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는 주인장의 창업정신을 통해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는 나름 유명한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루야마의 주문은 고객이 자리에 착석한 후에 시작됩니다.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카페 안에 따로 메뉴가 부착되어 있지 않은 점입니다. 무엇을 시켜야 될지 모르는 와중에 바리스타가 직접 메뉴판을 들고 자리에 와서 오늘의 메뉴와 주문되지 않는 메뉴를 소개해주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메뉴판 구성이 신문 형식으로 제공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원두에 대한 기본정보와 거기에 얽힌 이야기, 수상경력 등이 함께 제공되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음미해야 최적의 맛을 구현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 나오는 메뉴 형식이었습니다. 메뉴판은 무료로 제공되었습니다.



콜롬비아산 원두를 사용한 싱글 오리진 카페를 주문했습니다. 지난해 우승 경험이 있는 원두였기 때문에 단순히 믿고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12,000원으로 비싼 편. 바리스타는 주문된 싱글 오리진을 매우 세밀하게 제조했습니다. 온도는 물론 시간까지 측정해가며 싱글 오리진의 제조에 심혈을 기울이는 바리스타의 애티튜드에서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맛도 물론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제대로 된 원두만 팔자라는 사업주 특유의 마인드가 묻어 나오는 커피였습니다.

 


다양함은 어떻게 인식되는가


특별하지도 않을 것 같은 "다양성"은 사실 인식하기 매우 어려운 개념입니다. 한국의 다양성의 개념은 하드웨어적이고 표면적인 부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건축입니다. 어디서나 비슷한 설계의 도면을 차용하여 디자인만 조금 변경 한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다양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다양하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싫증이 나고 싫증이 나면 다시 부수고 짓는 것이죠.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확증되기 위해선 내부 소프트웨어까지 확실한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본질의 다양화입니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매우 다른 나라입니다. 한국은 항상 미래를 보려 하기 때문에 다이내믹하고 일본은 과거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디테일 함이 이어져오는 것뿐입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장단점이 명확하게 갈리는 것뿐이죠. 사실 일본에 가면 다양한 곳에서 혁신의 부재를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스피드는 확실히 한국이 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를 방문하다 보면 다양한 곳에서 한국이 따라가지 못할 영역이 눈에 보이곤 합니다. 디자인과 브랜딩 등 디테일한 장인정신이 접목되는 분야에선 아직 몇 수 아래로 보입니다. 하지만 서울과 도쿄의 깊은 낙차는 개인적인 배움에 있어서는 확실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여행입니다. 어느곳이 더 좋다라는 유치한 질문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더 소중하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