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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oia Sep 20. 2018

'진짜 사랑'도 변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것>


*영화얘기를 하지만 영화 리뷰는 아닌것 같아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극장에 가본 것은 열아홉 때였다. 수능이 끝났고, 대학도 붙었고, 있는건 시간 뿐이었는데 할 일은 드럽게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하릴 없이 모이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조금 지겨워질 무렵, 난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로 마음 먹었다. 영화를 고르는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포스터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손을 마주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남녀. 직관적인 제목. 제목만큼의 크기로 떡하니 써있는 '워킹타이틀'.

 


난 그때부터 워킹타이틀의 말랑말랑한 로맨스 영화를 참 좋아했다. 열일곱, 학기 말의 그 게으르고 포근한 교실에서 반 아이들과 다 함께 본 <러브액츄얼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열여덟 크리스마스에 본 <어바웃타임>은 또 어땠나. 극장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내게 남은 겨울이 이틀밖에 없다면, 첫 날은 <러브액츄얼리>를 보고 마지막 날은 <어바웃타임>을 봐야지. 그렇다면 난 나머지 계절동안 혹한기 한국의 무시무시한 추위를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처럼 바보같이 또 겨울만을 기다리게 될거다.  

 그래서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이 영화를 골랐다. 겨울이고, 나는 곧 스무살이고, 설렘과 온기를 그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혼자 만끽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갖춰져있다. 온전한 설렘과 조금도 할퀴어진 데가 없는 만족감을 가지고 집까지 혼자 걸어야지. 분명 엄청나게 행복할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 안 불이 켜졌을 때까지 난 펑펑 울고 있었다. 혼자 영화 보러온 여자 애가 그렇게까지 울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였을지는 뻔하다. 이상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해도 혼자 있는 그 기분에 완벽한 행복을 느꼈는데, 보고 나오자 견딜 수 없을만큼 외롭고 슬퍼서 아무에게나 막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극장을 나서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었지만, 시끌벅적한 곳에서 놀고있던 친구들은 내 말에 관심이 없었다.




  직관적이라 끌렸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 The theory of everything>이라는 제목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그러니까 조금 쳐내고, 반질반질하게 다듬어서, 예쁘고 반짝이는 모습만 보여줘도 됐을텐데. 무슨 섬광을 맞은 것처럼 별안간 사랑에 빠지고,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하게 그것을 대하고, 서로가 편해지고,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끈끈해지다가, 불행을 극복하면서 도리어 마음은 지쳐가고, 같이 있는 것이 버거워지고, 다른 누군가와 있을 때 더 나다워지고, 그래서 결국은 헤어지는 것까지. 잔인할만큼 다 보여줬다. 물론 영화는 스티븐 호킹과 그의 첫 아내인 제인 와일드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고, 호킹과 제인은 헤어지고 각자 다른 사랑을 찾았기 때문에, 애초에 현실이라는 끝이 존재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사랑한 순간 순간을 리와인드하는 것으로 끝낸 엔딩은 너무 했다. 마음을 붙잡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던 마지막. 호킹과 제인 둘 모두에게 서서히 찾아오던 비극.세상에 둘 뿐인듯 서로를 마주보던 결혼식. 휠체어도 지팡이도 필요없는 호킹과 제인이 뛰어다니던 캠퍼스의 잔디밭. 행복과 불행의 조각 조각들을 되감다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처음 서로의 눈동자를 마주보았던 신년 파티장이다. 함께 많은 불행을 이겨냈지만 바래가는 사랑은 되돌리지 못했던 노년의 둘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운명적으로 서로를 알아봤던 스무살로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로 빙의해 울부짖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랑했는데, 저렇게 웃었는데, 저렇게 울었는데, 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변할 수 있는지. 물론 그때의 나도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쯤은 잘 알았다. 정말 사랑이 영원하다면 그 많은 이별 노래가 왜있으며, 내 친구는 왜 남친에게 차였겠나. 하지만 적어도 '진짜 사랑'은 영원해야한다고 굳게 믿었다. 사람의 인생이 한편의 영화라면, 잠깐 잠깐 스쳐가는 치기어린 사랑은 금방 끝날 수 있지만, 마지막을 장식할 '진짜 사랑'은 해피엔딩이어야 하는 것이다. 두시간을 할애해 그려낸 운명적인 사랑의 마무리가 결국 이거라니. "이러니 저러니해도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류의 드라마로 사랑을 배웠던 열아홉에게, 이 결말은 너무 가혹했다.



 그 후로 몇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가 얼만큼 자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생각을 말하자면, '진짜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다.

감정을 나눈 하나하나의 사랑은 모두 진짜고, 각각 한편의 영화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 러닝타임과 결말, 그리고 흥행과 평가에서 차이가 있을 뿐. 영화를 최악이라고 혹평할 때도 그 영화가 가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지나간 사랑은 가짜였다고 부정하지 말자. 서러워하지도 말자. 우리는 한 평생 사랑을 하면서 어쨋든 의미 있는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랑이 바래져가는 것은 몹시 슬프지만 못견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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