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 좀 정상이 아니다. 원래도 한 '기복'하는 나는 하루에도 열댓 번씩 기분이 바뀌는 사람인데, 나도 모르는 새에 스물넷이 되고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이 상황이 요즘 내 기분을 거의 삼십 분 단위마다 바꿔놓고 있다. 여느 날처럼 긍정과 좌절, 행복과 우울,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뒤섞임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던 중 나는 문득 이 영화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떠오른 게' 아니라 '떠올린 것'이다. 고개를 잔뜩 움츠려야 했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찾아온 봄기운 덕에 들떠서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라는 찬란한 기운이 세상 구석구석에 퍼지는 이 좋은 봄날에도 자꾸만 가라앉는 마음 때문에 애써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이다. 적어도 떠올리는 동안은 모든 불안하고 울적한 마음을 잊고 봄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맞을 수 있게 하는, 말하자면 <4월 이야기>는 그런 힘이 있는 영화다.
러닝타임은 67분. 웬만한 드라마 한 편 분량 정도다. 극적인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고향과 가족의 품에서 떠나 대학에 입학한 여자 아이의 4월을 잔잔하게 담는다. 멀리 떠나는 저를 배웅하는 가족들의 얼굴, 집에서 갖고 온 짐들로 가득 채워보는 나만의 첫 공간, 어색한 첫 자기소개, 저에게 말을 걸어주는 첫 학교 친구, 조금 이상하지만 즐거운 것 같기도 한 첫 동아리, 쭈뼛거리며 안면을 튼 이 도시의 첫 이웃. 요란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이 '처음'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꼬리에 옅은 미소가 걸린다.
마셜 맥루언은 영화를 '통조림으로 만들어진 꿈'이라고 말했다. 더없이 상업적이면서도 가치적인 영화의 모순된 특성을 지적하려 했던 맥루언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통조림으로 만들어진 봄'이라 말하고 싶다. 봄은 모든 게 시작되는 계절이고, 그래서 '처음'이라는 순간에서 파생되는 모든 감정과 더없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설레고 기대되지만 어색하고 살짝 두렵기도 한. 봄이 유독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벚꽃이 유독 빨리 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속절없이 밀려오는 처음과 시작들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겨우 쬐지 못했던 볕을 이제 조금 즐기려 하다 보면 어느새 햇빛이 너무 뜨거워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4월 이야기>는 딱 따스하고 부드러운 온도의 봄볕으로 가득 찬 영화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꼭 통조림으로 만들어진 봄볕을 들이켠 기분이 든다. 몸 전체가 온화한 볕으로 채워진 이 기분을, 언제고 원할 때 간편하게 몇 번이고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통조림 속 음식이 거의 평생 썩지 않는 것처럼, 이 영화도 그럴 것이다. 개봉 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렇듯, 또 지금으로부터 20년이고 30년이고 한참이 지난 그 이후에도, 언제나 상하지 않는 그 봄의 빛을 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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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를 해보다가 이와이 슌지 감독은 자신의 영화 특유의 영상미 (빛이 바랜듯한 부드러운 느낌)을 싫어했고, 이는 촬영감독 시노다 노보루의 취향이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감독이 추구하고 싶은 바는 이해하지만 난 정말이지 <4월 이야기>는 그 특유의 영상미가 팔 할은 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빛을 이렇게 담아냈을까, 하고 몇백 번이고 감탄하며 영화를 봤다. 봄볕을 들이켠 기분이 들었다는 나의 감상 또한 그 '빛'에서 온 것이 크다. 서사만큼이나 화면 자체가 가진 힘을 깨닫게 만드는 영화였다. 화면 안 빛이 나에게, 내 몸 안 구석까지 전달되는 것 같은 이 감각적 경험이 정말이지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