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u Sep 14. 2018

술:인생의 동반자 인가 웬수 인가   

"끊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전날 과음으로 인한 단기성 죄책감과 괴로움으로 술을 줄여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수 없이 가져봤다.

술 때문에 후회스러운 날들이 많았음에도 한 번도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담배에 대해서는 ‘백해무익’이라는 절대 惡의 존재로 인정하고 단칼에 끊었으나 술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유지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술은 식사의 일부로 간주하고 음식의 풍미를 더하게 하는 식탁의 필수 음료로 생각해왔다. 프랑스 인들이 와인을, 독일 인들이 맥주를 매 끼니마다 음료처럼 마시 듯 술은 음식의 맛을 넘어 분위기를 위한 절대적인 존재라고 받아들였다.

위 이미지에서 와인이 빠졌다면 회가 맛있어 보일까?

문제는 술이 음료를 넘어 알코올의 범위로 들어서면서 ‘취한다’는 상태가 되었을 때 다른 개념으로 정립이 된다는데 있다. 나 역시 술 때문에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더 이상 술 마시고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기를 다짐하지만 항상 그 적정선을 넘어선다. 나에게 술은 이미 음료의 개념보다 술을 마심으로 느끼는 ‘취기’에 의존하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것 같다. 음주음전 검문에 걸려서 면허 취소가 되었던 적도 있었고 택시 안에서 만취하여 정신을 잃고 근처 파출소에 간 적도 있었다. 술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이제까지 한번도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술이 잘못이 아니고 절제를 못하는 내 잘못이었으니 나만 기준을 정하고 관리를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매번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잣대로 새로운 기준을 정하게 되었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마약 중독자가 오늘은 '뽕'을 투입했으니 내일부터는 대마 흡입으로 약 수치를 낮추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약을 해보지 않아서 그 취함의 정도를 모르겠으나 술에 취하는 것 역시 긍정적인 요인은 별로 없으며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은 마약과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항상 너무 가까운 곳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무실 내 자리에도 집으로 차마 배달하지 못한 와인 세 병이 있다. 또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벌써 두 건의 술 먹자는 콜이 있었다. 술은 이미 내 삶 깊은 곳에 진입해 있고 내 주변 많은 사람들과도 엮여 있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하고 내 주변 친한 사람들 대다수가 술을 좋아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술을 절제할 수 있을지 또 그게 실제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도 술이 ‘땡긴다’. 심각한 수준임이 분명하지만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최근 <어느 애주가의 고백> 이라는 독일 저널리스트가 쓴 책을 읽는 중이다.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만큼 술을 즐기던 저자가 술을 완전히 끊은 이야기를 끝까지 읽기가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가와 같이 그렇게 좋아하고 즐기던 술을 완전히 삶에서 배제해야 하는 그 상황을 나는 마주할 수 있을까. 결국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완독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인생을 술 마시던 시간과 술 끊은 이후의 시간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를 차마 교훈 삼을 용기도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좋아하는 술을 즐기며 살아가려면 적당히 마시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그 '적당히'를 유지하기 어려운 내가 참 가벼운 존재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