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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paris Dec 28. 2018

스위스라서 가능한 이야기


'농부가 부자인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곳.
뒷산에 오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모두 농장에다 우리 집 건너편만 봐도 농장이 떡하니 있는 곳.
근데 또 길거리엔 슈퍼카들이 쌩쌩 달리는 이상한 곳에 내가 살고 있다.


어쩌면 스위스라서 가능한 이야기. 혹은 적어도 스위스에서는 가능한 이야기.

언제든 찾아가면 문 열어 반기는 오픈마켓 이야기다.
스위스니까 가능한 직구(직접 구매), 농장에서 장보기는 어느덧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5년 차 삶에 어쩌면 당연한 단골 농장들도 생겼다. 우유는 여기, 요거트는 저기, 채소는 옆 동네 농장에서 구매한다고 자신있게 추천하며 지도마저 그려줄 수 있을 정도다.




토요일 오전,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농장에서 장보기로 시작하는 평화로운 주말. 신선한 고기부터 채소, 유제품, 시리얼까지 원하는 건 뭐든지 우리 동네 및 옆 마을 농장에서 구매 가능하다. 덕분에 쌓이는 제철 채소 및 과일에 대한 지식은 덤이다.
직접 보니 믿을 수 있는 유기농 상품들에 언제 봐도 황홀한 풍경까지 얻고 오는 즐거움은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장 보는 즐거움과는 분명 또 다른 매력이다.


이제는 서로 익숙한 얼굴들.
상점 옆 농장 구경은 자유롭게 가능하다.
양떼가 내게로 달려올 때.
길 잃은 아기 양이 주인 품에 안겨 가족 상봉.


한때는 그저 편리성만 추구하며 집 근처 슈퍼마켓까지 가기 보다 집 바로 앞 편의점을 선호했었다. 스위스 정착 초기만 하더라도 슈퍼에서 모두 한 번에 구매 가능한 것들을 굳이 농장 여러 곳에 찾아갈 수고가 필요한가에 대한 남편과의 의견 충돌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직구의 매력은 여느 장보기와 비교불가했다. 재배지를 직접 보고, 주인의 얼굴과 아뜰리에를 직접 마주하고 구매를 이어가는 행위 자체에 판매자의 신뢰까지 자연스레 더해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집 옆마당에 조그마한 정원을 가꾼 뒤부터는 웬만해선 무조건 농장을 찾는다. 뭐든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수확까지 이르는 노동의 강도와 시간을 몸소 체험하니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동네 농장에서 사야겠더라. 왠지 마음이 꼭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고생하셨어요, 잘 먹을게요- 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듯 물건을 골라 담아 다음 주 같은 요일, 비슷한 시간대에 또 만날 기약을 남기고 또다시 반복될 만남.


파스타를 구매하러 들른 또 다른 농장.
행복이 가득 담긴 얼굴들. 볼 때마다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농장 주인 가족.
오로지 농장에서만 구매해 온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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