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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paris Jan 07. 2019

스위스 겨울에 파묻히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스위스 역사상 가장 따뜻한 겨울이었다더니,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 폭탄이 떨어졌다.


덕분에 혹은 때문에, 온 동네 적막 속 유일한 소음은 모두 우리 집 옆마당에서 터져 나왔다. 눈 치우고 눈사람 만들고 눈썰매까지 타느라 바쁜 우리 집 세 남자 덕분에 따뜻한 집에서의 자유 시간은 오롯이 내 몫이다.



여름 내내 소들이 풀 뜯던 들판이 한 소년의 스키 연습장으로 변했다.


눈 오는 주말이면 마을 내 이동 수단은 눈썰매가 유일한가 싶을 정도로 곳곳에 눈썰매를 끌고 타고 가는 어른 및 아이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들판에서 스키 타는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곳. 스위스에 살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삶은 우리 아빠가 들려주던 어린 시절 추억의 시골 생활기 정도였기에 이 풍경들이 처음엔 어찌나 생경하던지. 5년이 지난 지금은 나 또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자신할 수 있는 겨울 풍경.





“우리 집 뒷산에 스키장이 있어. 옆 동네에도 있고, 옆 마을에도 있어.”

스위스에서 스키 타보고 싶다는 친구에게 전한 말이다. 유명하고 비싼 리조트로 갈 필요 없이 우리 동네에 놀러 오라고. 뒷산에 스키장이라니. 첫해에는 내가 말하면서도 실감 나지 않던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 스키장이 엄청 유명하거나 큰 것도 아니다. 그저 들판에 눈이 쌓여 자연스레 스키장으로 바뀌고, 리프트가 설치되는 스위스에서 지극히 평범한 동네 스키장일 뿐. 그런데도 아이들은 주말마다 스키 강습을 받거나 스키를 타러 가고, 마주치는 동네 주민들은 날도 좋은데 스키 타러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겨울 주말 일상.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어린 시절과는 극명하게 다른 삶이 내 아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사 오자마자 했던 일이 스키 강습을 받는 것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 따라 강원도 어느 리조트에서 초스피드로 배웠던 스키는 두어 번 단발성으로 그쳤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꼬꼬마 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어른이었는데 당시 그게 어찌나 민망하던지. ‘너네는 좋겠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탈 수 있는 환경이 있어서.’

알고 보니 학교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스키를 타러 간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배워둬야 한다는데, 지극히 스위스다운 조기교육이다 싶다.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뒷산에서 스키 타는 삶은 이곳 아이들에게 날 때부터 주어진 환경이었다. 그러니 내 실력에 민망할 것 없이 그저 다치지 않게 타고 또 타면 될 일이다.




길고 긴 스위스의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주말마다 눈썰매를 타고 스키를 타는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삶. 올겨울도 눈 속에 파묻힌 즐거움들을 발견하는 재미로 채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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