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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Nov 18. 2021

고3 새 학기의 첫날

고3이 되던 해,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반이 배정되고 각 반의 담임 선생님이 발표되는 날.

우리 반 담임선생임은 국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그닥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실력 없는' 스승에게 내 마음이 그리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2 때도 국어를 가르치셨던 그 선생님은 모의고사 진도도 다 마치지 못한 채 시험을 보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원래 우리 반 담임은 수학 선생님이었는데 우리 집에서 학교에 전화해서 다른 반과 담임이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내가 평소에 이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으면 말을 안 해. 수업 시간에 풀이 방법을 까먹고 답도 종종 틀리던 수학 선생님도 싫어했지만, 느릿느릿 진도 나가는 국어 선생님도 그에 못지않게 싫어했다구!!!


이 마음은 잠시였고,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사람들의 구설에 오른다는 게 싫었다. 중요한 학기가 시작되는 날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학교의 온갖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날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 몇 명을 만나 이 이야기를 다. 아이들도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나는 눈물을 흘렸고, 아이들은 억울하겠다며 사실이 아닌 얘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시작된 고3 생활은, 벽을 터서 이어 붙인 교실 몇 개에 전교 1등부터 몇 백 등까지 등수대로 일렬로 앉아 자율학습을 하게 한 환경 속에서 1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공간 속에서 숨도 잘 안 쉬어지는 경험을 하며.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편한 나날을 보던 나는 결국 가장 많이 한 생각대로 "떨어지고" 말았고, 1년의 재수 생활을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도 졸업하고 시간이 한참 흘렀을 때였다.

엄마랑 고3이 되던 첫날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물론 그 일을 겪은 날 부모님께도 말씀드리며 억울함을 토로했던 것 같다) 뜻밖에도 그 일이 사실이었다 엄마가 고백했다.


내가 평소 수학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기 때문에 그 선생님이 고3 때 이과인 우리 반을 가르치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내가 헛소문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진상/갑질 학부모의 자식이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친구들 중에는 그 수학 선생님 반 아이가 많았는데 그 친구들에게 미안다. 그들의 대학 입시 결과가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게 마치 내 탓인 것 같아 자책하는 마음도 조금 들었다.


학교 성적이 권력이던 시절.

자식이 걱정되어 자식을 위한다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지만 나에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부모에 대한 원망도 함께.


당신들이 그렇게까지 했지만 나는 결국 고3 입시에서 떨어지지 않았수?

우리 부모님의 전화 때문에 다른 반 담임이 된 그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셨을까? 내가 고3 때 떨어졌을 때 그 선생님은 고소하지 않았을까? 다른 선생님들도? 설마 이 학생을 꼭 명문대에 보내야 하학부모의 그런 개입쯤은 괜찮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고1 때 친구들은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데, 뒤늦게 알게 된 당시의 진실을 아직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친구들은 잊어버렸을 수도 있고, 시간이 한참 지나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 못내 남아 있는 찜찜한 기억이다.  글을 통해서라도 그 찜찜함을 덜어내고 싶네.


엄마에게 쌓아 두었던, 그동안 못했던 말을 혼자 꺼내면서 이 사건이 생각났다.

내가 느낀 억울함, 당황스러움, 사실을 알게 된 후의 미안함과 부끄러움.

이게 다 내 몫이네.

사건은 당신들이 저지르셨는데...


이렇게 털고 나면 좀 나아지려나.

오늘은 수능 보는 날.


네이버 검색하면 다 나오는 단순 지식을

달달 외워 시험 보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간의 회의도 함께 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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