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강박, 불신
내 안에 존재한다고 요즘 느끼는 것들이다.
마스크 벗고 밥 먹을 때면 혹시 감염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내가 털어놓은 내밀한 이야기가 다른 데로 새 나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완벽에 대한 강박도 있다.
'불'이라는 글자가 두 개나 있다 보니
그 반대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안전과 신뢰, 그리고 완전하지 않아도 편안한...
나는 갓 태어나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이곳이 안전하고 믿을 만하다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했나 보다.
아들일 거라는 기대를 태중에서부터 받았으니
막 태어나 '딸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의사한테 들었을 땐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알아챘으리라. 갓난아이였지만...
이렇게 태어나도, 이렇게 생겼어도, 이렇게 살아가도,
이곳은 안전하고 믿을 만한 곳이라는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했나 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꾸만 얘기해 준다.
그때 태어난 나에게.
이 모습 이대로
너는 참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고.
너답게 살아가도 아무 문제 없다고.
태어난 몸에 '고추'가 달려 있지 않아도
시장에서 '고추' 사서 달아달라 말하지 않아도
너 자체로 사랑스럽고 귀중한 존재라고.
너무 늦게 이 말을 해서 미안해.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해.
이런 답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아니,
이제라도 얘기해 줘서 고마워.
이제라도 알아주니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