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저는 운이 좋습니다.
하고 싶던 일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도 자주 버겁게 느껴져요.
이게 무슨 배 부른 소리람.
디자이너로서 일한 지 4년. 짧기도 길기도 한 기간이지요.
아직도 디자인을 잘 모르겠고 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게 두렵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 백지를 쓸모있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하다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될 때면 지금이야말로 디자인을 관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하.
힘든 일을 무사히 마무리한 뒤의 개운함,
나의 정성을 쏟아 세상에 나온 작업들,
어려운 일이 더이상 어렵지 않게 느껴질 때의 성취감.
그동안 이런 향상심이 이 일을 지속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어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런 짜릿함이 채찍질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조바심과 두려움이 성취감을 압도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되려 무기력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일잘러로 폭풍 성장하는 것에는 관심이 멀어졌고요,
대신 어떻게 해야 향상심에 잡아먹히지도, 무기력에 빠지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어요.
조금 알 것 같은 건, 건강부터 잘 챙겨야 한다는 점..?
일단은 무기력한 저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 줄 셈입니다.
저는 그저 사랑하는 일을 오래도록 재미있게 하고 싶을 뿐이니까요.
오늘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막막함과 두려움을 느낄 때, 공감이 되는 책을 소개해드립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막막하기만 한 날이 있지 않아요?
아무리 애써도 시장에 잔물결 하나도 일으키지 못하는,
유리벽 뒤에서 힘껏 외치지만 건너편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그런 답답한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의 업을 짝사랑하는 기분이 들어요.
이 책을 쓴 작가님도 글쓰기를 짝사랑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해요.
저는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작가님의 이야기를 따라 울고 웃었답니다.
하는 일은 달라도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가봐요.
좋았던 문장을 일부 소개해드릴게요.
내 글은 나라는 사람보다 더 훌륭해 보였으면 좋겠다. 왜냐, 나는 내 맘대로 안되지만 내 글 만큼은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아무리 써도 내 글에 만족한 적이 없다. 늘 그만둬야 하나 싶지만 그만둔 적도 없다. 그야말로 꾸역꾸역, 가끔은 억지로, 가끔은 힘들게, 가끔은 신이 나 글을 쓴다. 그 어떤 감정이 몰려오더라도 결국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그렇다. 모든 건 다 나 좋아서 하는 일이다. 아무도 이 일을 하라고 시킨 사람이 없다. '글 안 쓰면 가만 안 둘 줄 알아!'라고 협박한 사람도 없다. 스스로 이 일로 먹고살기로 결심했고, 운 좋게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 무시무시한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 부정하고 슬퍼하고 분노 혹은 좌절하고 자책하고 후회하면서도 결국은 수용하게 된다.
좋아해서 몰두해 왔던 일이 나를 너그럽게 봐 주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이 책으로 벌떡 일어서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멋져 보이는 문장을 늘어놓고 나니 글 구석구석에서 이런 열망이 느껴졌다. 나 좀 좋게 봐 주세요. 대단하다고 말해주세요. 아직 나를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데, 이 일은 또 나를 안 좋아하겠지. 이 책은 또 안 팔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 글 쓰는 일 따위 그만두고 싶었던 사람은 사실 글 쓰는 일 따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짝사랑이라도 계속 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눈빛이, 마음이, 응원 또는 꾸지람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걸 조금씩 알아 간다.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칭찬이 필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칭찬하고, 지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 내밀고 싶다.
나처럼 온갖 의문을 품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작은 점처럼 흩어져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으로 기운이 날 때가 있다.
처음 접한 이연님의 영상이 책과 같은 이름의 영상이었어요.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방법이라니, 모든 그림쟁이의 고민 아닌가..!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백지 공포증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비단 그림 그릴 때만이 아니라 본업인 디자인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섬네일을 마주한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고요.
(역시 유튜브 알고리즘...)
이 책은 이연님의 차분하고 조곤조곤하지만 명확한 신념이 담긴 목소리가 그대로 책이 된 느낌입니다.
숱한 좌절과 비루함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아가려는 태도가 저에게도 용기가 되더라고요.
어떤 일이 두렵다면, 그만큼 멋진 일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일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드려요.
남들보다 겨우 조금 더 잘 그리고 좋아할 뿐이야. 마음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을 거야. 나에겐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 그림은 시간 낭비야... 하며 살았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하는 학생, 그것이 바로 나였다.
지금 나는 당장 과거의 나에게 돌아가 대답을 해주고 싶다. 당연하지, 뭐라도 그려! 종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크레파스 닳는 일에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뭐든 그려. 네가 지금 아끼고 있는 그 크레파스는 나중에 영영 찾을 수 없으니까 있을 때 마음껏 좋아하는 색깔을 써둬.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이 사실을 계속 떠올려야 한다.
나는 실제로 부족한 돈과 불투명한 미래와 어중간한 재능과 무명까지 다 겪어봤다. 하지만 겪은 후에야 싸울 면역을 갖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진다. 그러니 이길 때까지 싸우고 샛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게 이기는 방법이다.
'아무것', 그런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기분이 있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평소에 그렸던 것들이 시시하거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민만 깊어지고.
매번 비겁하게 가장 힘든 순간에 그림을 찾곤 했고, 그림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한때 친구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나의 세상에서 그림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근데 그림이 나에게나 중요하지 세상은 내 그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배움의 길을 스스로 고찰하고 더듬어가며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싶은 그림을 항상 선명하게 품고, 고독을 참으며 몰래 피워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잘해야 즐거워진다. 그림이 정말로 지루하고 재미없을 가능성보다 당신이 아직 즐거울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스스로의 어설픔과 창피를 견디며 멋없는 노력을 반복해야 한다.
나의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잘하고 싶고, 그래서 오히려 두려워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자기 일이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