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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n 16. 2024

교육에서 가치를 선택할 때 벌어지는 일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4] JTBC <졸업> 혜진의 용기

 JTBC 드라마 <졸업>의 첫 회를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학교에서 들었던 말과 거의 똑같은 대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장면이었다.


 드라마의 1회. 국어시험에서 오류를 발견한 찬영고 아이들 몇 명이 선생님께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자 담당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학원에서 그렇게 배웠냐고."


 내 아이가 중학교 때 과학시험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찾아가 이의 제기를 했을 때 들었던 바로 그 말이었다. 그때 아이는 큰 상처를 받았고, 나는 한국의 기형적인 교육 현실이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쟁 구도마저 만들어 낸 것 같아 깊은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졸업>은 대치동 스타강사 혜진(정려원)과 준호(위하준)의 로맨스에 이런 한국 교육의 현실들을 적나라하게 녹여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드라마의 인물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꼈다. 이 오래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어쩌면 사람의 마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말이다.


   

▲ 혜진은 대치동의 스타강사로서 탄탄한 입지를 누린다. ⓒ JTBC


'돈'이 필요해 학원 강사가 된 혜진


 혜진은 드라마의 배경인 대치체이스 학원의 스타강사다. 법대 재학 시절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학원강사 생활을 시작한 혜진은 첫 제자 준호를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내신 8등급이었던 준호는 고려대에 입학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학원 강사로서 자질을 발견한 혜진은 조그마한 교습소 수준이었던 대치체이스 학원이 대치동에 자리 잡는데 톡톡히 한몫을 한다. 혜진은 늘어나는 아이들 수만큼 부를 쌓는 자신의 일에 대해 "아이들 가르쳐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얼마나 보람된 일인데"라며 의미 부여를 한다. 하지만, 학교 교사에게 '기생충' 소리를 듣고, '스승'이 아닌 '강사'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는 애써 외면하며 지낸다.


 이런 혜진은 많은 학생을 거느리게 되고, 학원의 원장마저 두려워하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화원고 아이들까지 유치하기 위해 준호와 함께 벌인 무료강의 행사에서 단 한 명의 학생만이 참석하는 '우주적 망신'을 당하고 이 일을 계기로 학원에서 입지가 좁아진다. 그 찰나, 혜진은 경쟁학원인 최선국어의 최형선 원장(서정연)으로부터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그런데 혜진은 망설인다. 모든 조건들이 옮기는 게 맞다고 알려주는데도 친구 소영(황은후)에게 이렇게 말한다.


 "니 말대로 그 두 장 짜리 약정서에 내가 원하는 조건 넣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게 맞거던? (...) 근데 왜 이렇게 발이 안 떨어지지? 나 그전까지는 아무 문제없었거든. 열심히 가르치고 그만큼 벌고, 그걸로 애들 불어나면 통장 잔고도 불어나고. 나 그 보람으로 살았는데, 근데 다시 그 생활로 못 돌아갈 것 같아." (5회)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내다


 나는 혜진의 이 마음이 외면하고 있던 자신만의 '가치'를 찾기 시작한 신호로 보였다. 심리학에서 '가치'란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바람직한 것 혹은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기준이 되는 어떤 대상을 의미한다. 사람은 저마다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이를 추구하며 살아갈 때 보다 나답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혜진은 실패로 기록된 무료강의 행사에서 단 한 명의 학생 시우(차강윤)를 위해 강의를 하는데 이 강의는 오래전 첫 제자 준호를 가르쳤을 때와 오버랩된다(4회). 이때 혜진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보람이 단지 '늘어나는 아이들과 통장 잔고' 때문이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아직 새로운 가치를 명명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이대로 살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엄습해 왔을 것이고 이에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던 혜진은 장학금까지 받으며 다니던 최선국어를 그만두고 자신의 강의를 듣겠다고 온 시우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지금까지 들었던 국어수업 중에 젤 좋았어서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7회)


 이 말을 들은 직후부터 혜진은 두통에 시달린다. 이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몸과 마음의 신호 같은 거였을 테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늘어나는 아이들과 통장잔고는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가 아니었음을, 아이들의 성장에 함께 하는 기쁨이 자신의 가치였음을 말이다. 더욱이 오직 시험점수만을 위한 공부에 의문을 달고, 문학을 느끼며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우의 모습은 혜진에게 더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본 후 혜진은 준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작 16살짜리 꼬셔놓고 연봉이 어쩌니 부원장이 어쩌니 아 그걸 생각하면 그냥 창피하고 한심해서 죽고 싶었어." (7회)


    

▲ 혜진은 첫 제자 준호와 함께 기적을 만들어 낸다. ⓒ JTBC


 그렇게 혜진은 최선국어의 제안을 거절하고, 시우를 가르쳐보기로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 진짜 좋은 결정 했다 그랬어. 기분이 막 째졌어. 나 아주 오랜만에 내가 꽤 마음에 들어." (7회)


 이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실천할 때 보다 생기 있어지고 '나다운' 느낌을 갖게 된다. 혜진은 마음의 혼란을 외면하지 않았고, 이를 잘 들여다보면서 가치를 선택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에 보다 '마음에 드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에서도 가치를 추구한다면


 나는 혜진처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의 한국 교육에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오직 대학입시만을 위한, 그것도 돈을 잘 벌 수 있는 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공부가 진짜 공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학부모들 역시, 뭔가 잘못된 것이란 걸 알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들로 아이들을 등 떠밀고 있는 것일 테다. 학교의 교사들도, 학원의 강사들도 지금의 교육이 진짜 공부와는 거리가 먼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누구도 혜진처럼 그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자신의 진짜 가치를 따르는 일은 무척 두려운 일일 것이다. 혜진이 자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때 두통에 시달리며 무서워했듯이 말이다. 또한, 어렵게 용기를 내더라도 현실은 이를 호의적으로 바라봐주지 않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를 따르기로 결심한 혜진은 10회 형선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교육자이자 장사치. 그 괴리감을 서혜진 선생처럼 깔끔하게 외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죠."


 어쩌면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이런 비아냥을 참아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교사로서 굳은 신념을 지녔던 상섭(김송일)이 학원강사의 길을 걷게 되는 것 역시 본질적 가치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현실이 내버려 두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진짜 현실에도 이런 장애물은 무수히 많다. 소수의 전문직이 아니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힘든 사회구조, 성적과 직업으로 줄 세워지는 사회 분위기, 다양한 재능이 평등하게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등. 본질적인 가치를 따르는 일은 이런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할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테다.


 그럼에도 나는 혜진이 자신의 가치를 선택한 후 '기분이 째진다'며 활짝 웃던 그 표정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드는' 그런 순간을 위해 용기를 내는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하나 둘 늘어날 때 지금의 교육 현실도 서서히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혜진은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실천하기로 결정하고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한다. ⓒ JTBC


 드라마의 9회. 혜진의 후배 청미(소주연)는 혜진에게 "왜 시우가 점수랑 상관없었는데도 선생님들 강의를 좋아했는지 궁금하다"고 묻는다. 이에 혜진은 이렇게 답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 상관이 없는 게 맞나.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드라마 <졸업>이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실천하는 일이 점수와 상관없지 않음을, 아니 점수와 상관없는 공부 자체로서 공부도 의미 있음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드라마 속 혜진과 같은 용기 있는 마음들이 모여서 기형적인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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