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33] JTBC <... 김 부장 이야기>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아래 <김 부장>)가 막을 내렸다. 다큐멘터리 같았던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무게와 그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 많은 공감을 받았다. '김 부장' 낙수(류성룡)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결국 퇴출되고 다시 서는 과정은 한국 사회 가장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지 우리 곁의 '김 부장들'을 토닥토닥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낙수의 여러 모습들은 여전히 가부장제의 전통에 기댄 채 경쟁과 성취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김 부장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위계 짓고 경쟁하는 문화
"내가 이겼어!" (1회)
드라마의 1회 낙수는 경쟁 상대인 영업 2팀의 부장 진우(이신기)가 들고 들어오는 가방을 검색해 보고는 이렇게 외치며 기뻐한다. 자신의 가방이 진우의 것보다 조금 더 비싸기에 환호한 것이다. 이 장면은 낙수가 무얼 위해 살아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낙수에게 삶은 늘 경쟁이었다. 어릴 적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형이 부모에게 더 사랑받는다 느낀 낙수는 형을 이겨보려 애를 쓴다. 하지만, 형이 반장할 때 부반장만 했던 낙수는 늘 형에게 밀리는 듯한 기분으로 자라난다. 이 기분은 평생 낙수를 관통하는데 낙수는 형이 자신보다 못한 대학에 들어가고, 회사에서 밀려났을 때 '기분이 좋기'까지 한다. 그렇게 마침내 형을 이기고 대기업에 취업한 낙수는 이 경쟁심을 무기로 25년 동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향이 무척이나 획일적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개성을 발휘해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하고, 돈을 모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전부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서 길들인 그 습관, 그러니까 사람을 서열 짓고 돈과 권력을 갖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공식을 따라간다. 때문에 대기업 생활 25년 차 부장 낙수에게 목표는 오직 임원을 다는 것뿐이다. 이 목표에 매몰돼 회사에서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다. 10회 정신과 의사(허남준)는 낙수의 회사생활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이 직장입니다. 초중고 대학입시까지 체화된 경쟁 DNA가 완전히 꽃을 피우는 곳이거든요."
나는 이 경쟁 DNA가 비단 낙수에게만 해당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의 가족 안에도, 이웃들 중에도, 주변의 아이들과 부모들 중에도 획일적 성공에 기대 '경쟁에서 이기는 걸' 목표로 살아가는 이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낙수의 이런 모습은 개인의 다양한 행복보다는 획일적 잣대로 성공하는 걸 더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자기 중심성과 책임감
경쟁 DNA가 마음을 지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최우선인 상태가 되고, 이는 타인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갖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과 관련 지어 해석하는 '자기 중심성'으로 이어진다.
낙수는 결국 공장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그 무렵 아내 하진(명세빈)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해 일을 시작한다. 그러자 낙수는 '버럭' 화를 내며 "당신까지 왜 그러냐"고 말한다(6회). 아내가 일하는 것을 가장으로서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로 여긴 탓이다. 이는 낙수가 타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하는 일조차, 자기 자신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이런 자기 중심성은 '책임감' 혹은 '남을 위한 일'로 포장되기도 한다. 이후 낙수는 결국 은퇴를 하고 퇴직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지만, 사기를 맞는다(8회). 그럼에도 낙수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에게 알려 해결책을 찾는 걸 주저한다. 마침내 사기 맞은 일을 가족들에게 들키고 말았을 때 가족을 위해 한 일이었다고 애써 위안 삼아보려 한다.
이에 아들 수겸(차강윤)은 낙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게 정말 저랑 엄마 생각해서 하신 투자예요? 보여주고 싶으셨죠? '나 회사에서 밀려나도 이 정도 산다.' 저 재수시킬 때도 그러셨어요. 말로는 다 날 위한 거다 하셨지만 결국 서울대 간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싶으셨던 거죠. 아닌가요? 가족이 정말 뭘 원하는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아버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으세요. 서울대도 이 상가도 우리가 원한 거 아니에요. 아버지." (10회)
이 말은 아마 낙수에게 '현타'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나도 '나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아이를 위한 것이라, 가족을 위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했다.
의존과 돌봄에 대한 터부
이런 자기중심적인 상태는 의존하고 돌봄 받는 것에 대한 터부를 낳는다. 낙수는 공황장애가 회사에서부터 시작됐지만, 이런 신호들을 애써 무시한다. 심지어 은퇴 후 사기를 맞고 대리운전을 하다가 공황장애가 와 사고가 났을 때조차 "정신과에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발끈하며 병원을 뛰쳐나온다.
아내 하진(명세빈)이 이런 낙수를 간신히 병원에 데리고 가지만, 그곳에서 조차 낙수는 증상 체크리스트에 모두 '아니요'를 표시한다. 그리고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대충 하고 나가겠다"고 채근한다(10회). 이는 낙수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돌봄 받는 것을 얼마나 터부시 하며 지내왔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낙수의 이런 모습은 독립해 성공하는 것만을 중요시하고 돌봄과 의존의 가치를 폄하해 온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낙수는 사기당한 매장에서 홀로 지내는 극한상황을 경험한 후에야 이야기를 나누자는 정신과 의사에게 마음을 연다. 상담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형에 대한 경쟁심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여전히 집을 지키고 싶었던 낙수는 집을 팔자는 하진에게 "집을 팔면 무너져 내릴 것 같다"며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11회). 하지만 이에 하진은 "진짜 지키고 싶었던 건 자존심"이라며 일침을 날리고, 이날 술에 취해 달리던 낙수는 마침내 다음 대사와 함께 '김 부장'을 떠나보낸다.
"나는 내가 지켜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하진이가, 수겸이가 그렇게 내 등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야. 그냥 이 알량한 자존심만 꽉 움켜쥐고 있었던 거야." (11회)
이렇게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난 낙수는 수겸의 마음에 귀 기울여주고, 하진의 일을 존중해 주면서 진심으로 가족들과 연결된다. 가족에게 솔직하게 '힘들다'라고 말하며 의존할 줄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이 다니던 ACT 법인차 세차를 하면서 자존심을 지키거나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일이 아닌, 진짜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는 법을 배워간다(12회).
나는 대기업에서 단정한 수트를 입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던 김 부장 보다 작업복을 입고 수염을 자연스레 기른 낙수가 더 '어른다워'보였다. 사실, '김 부장'은 '꼰대' 그 자체였다. 김 부장의 꼰대성은 경쟁과 성취에 집착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돌봄과 의존을 터부시하는 태도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면서 낙수는 가족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서로을 존중하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획일적인 경쟁과 성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보다 다양한 삶을 존중하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 때, 서로 돌보고 의존하며 살 수 있는 '어른처럼' 품어주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드라마 <김 부장> 이 남긴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