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파란
사진 | 파랑새극장
매월 마지막 수요일, 파랑새극장에서 '파랑새극장 공공무대'가 진행됩니다. '파랑새극장 공공무대'는 무대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낭독과 대화가 있는 시간입니다.
두 번째 공공무대의 주인공은 정세랑 작가님이었습니다. 작가님의 따듯한 목소리로 <아라의 소설> 일부를 들어보고, 시인이자 이 책의 편집자이신 서효인 시인님, 현장 관객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중 몇 가지 키워드에 대한 대화를 전해드립니다.
서효인: 짧은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텐데요. 미니 픽션, 엽편 소설이라고도 하죠. 집필 기간이 굉장히 길죠. 10년 전부터 최근까지 써온 글을 묶게 되었는데, 어떤 계획의 작업이었는지 기획 과정은 어땠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세랑: 저는 이런 장르를 좋아해요. 잡지에서 일할 때 원래는 15매~30매의 짧고 강렬한 글을 여러 작가님들께 부탁을 드리는 입장이었죠. 데뷔를 하고 나서 저도 쓰게 되었으니 '나는 언젠가 이 이야기들을 묶을 것을 감안하고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결을 맞춰놓았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묶어야지. 나는 짧은 소설을 좋아하니 흩어지게 두지 말고 한 번은 묶어야겠다.' 생각하면서. 늘 청탁을 받을 때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책을 떠올려보며 '그 책에 어울릴까?' 생각하며 조절해가며 받았던 것 같아요.
서효인: 좋아했던 엽편 소설이나 엽편 소설 작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정세랑: 최근에는 최은영 작가님의 <애쓰지 않아도>가 좋았어요. 너무 좋아서 보다가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깔깔 웃었던 건,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이 엽편 소설로 두껍게 네 권을 내신 게 있어요. 순서가 중요해서 제가 적어왔는데요. 괴소 소설, 독소 소설, 흑소 소설, 왜소 소설. 순서대로 읽었을 때 훨씬 재미있는 소설이에요. 출판계의 뒷면을 적나라하게 비아냥거리는, 엄청 독한 소설이었어요. 출판계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깔깔 웃으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효인: 착상의 과정에 대해서도 질문 주셨어요.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으실 텐데, 작가님께서 쓰시는 장르도 다양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소설로 풀어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 생각은 어떻게 풀어내지 하는 궁금증을 독자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정세랑: 작가들마다 다른데 저는 메모를 엄청 하는 편입니다.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일, 오늘 길에서 발견한 것, 책에서 읽었던 흥미롭고 조금 더 파고 들어가야 할 주제 등. 메모의 80%는 쓰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20% 사이에서 두세 개의 메모가 붙는 순간이 생겨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거죠. 그러면 이야기가 될 준비가 되었구나. 글을 쓰실 때 메모를 먼저 시작하시면 좋겠는데, 메모해 둔 것이 서로 붙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했던 메모 중 가장 오래 있다가 붙은 메모는 7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동안 잊혀 있다가 어느 날 새로운 메모가 생기니 붙더라고요. 어차피 아이디어 하나로 되는 게 아니라 단편은 적어도 세 개, 장편은 그것보다 더 많이 열 개, 열다섯 개가 붙어야 할 수 있으니까 자성을 살피며 다시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해놓으면 까먹기 마련이라 몇 년에 한 번씩 과거의 메모로 돌아가서 지금 내가 쓰는 이야기에 붙을 만한 아이디어가 없나 복기해 보는 거죠. 저의 노트가 정말 너덜너덜한 상태인데 그래도 소중한 보물인 것 같아요.
서효인: 정세랑월드는 우리가 사는 세계처럼 진행형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정세랑 세계의 어떤 면모가 독자분들께 사랑을 받고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 걸까요?
정세랑: 일단 너무 감사드려요. 제가 숨겨놓은 여러 가지 것들을 독자분들이 발견해 주실 때 즐거움이 너무 커요. 그래서 좀 더 연결시키고 숨겨두려는 노력을 하게 돼요. 감사함과 별개로 사랑해 주시는 이유는 아마 제가 현실과 가깝지만 현실은 아닌 세계들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어서, 그런 세계에서 조금 더 안심하고 모험을 즐길 수 있어서 인 것 같아요. 물론 제가 만든 소설 속에서도 나쁜 사람들이 등장하고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만 회복도 동시에 있는 세계잖아요. 그게 픽션의 세계이자 역할인 것 같아요.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에서 다치는 것보다 덜 다칠 수 있고 회복도 도모해 볼 수 있고, 회복을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있는 그런 점을 아마 사랑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일종의 가상 세계라서, 그래서 아마 월드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서효인: 저는 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안전한 마음, 안온한 마음이 그 세계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생기는 것 같아요. '정세랑이 소설을 쓰는 세계에 내가 살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독자로서 우리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독자분들이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냈던 작품을 나눠 읽고 하시는 것 같아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