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하나에 엉덩이는 하나
연애는 2인석이다. 두 명이 앉을 자리에 엉덩이 세 개가 들어오면 좁고 불편하다.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 좁고 불편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풋풋했을 무렵, 한창 트렌드로 떠오르던 익선동을 갔다. 여기저기 풋풋한 연인들의 모습. 한껏 꾸미고 나온 소녀들의 모습. 젊고 파릇한 기분이 나에게까지 닿았다. 데이트 하는라 설레는 마음이 더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갔다. 시나몬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인 디저트가 눈에 들어왔다.
"당근 케이크 예쁘다. 나는 저거 먹어야지."
"나 당근 케이크 안 좋아해. 안 시킬래."
"왜? 오빠는 당근 케이크 싫어해?"
오빠의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오빠는 당근 케이크를 안 좋아하는구나. 그것을 내 머리에 입력하면서 다음엔 신경 써줘야지 하는 순간.
"전 여자친구가 좋아했어. 걘 그거 밖에 안 먹어. 그래서 싫어."
하... 저 입을 꼬매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다는데 전 여자친구가 좋아했던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걸까? 댁의 전 여자친구가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내가 당근 케이크를 왜 시키고 싶어하는지 물어봐주길 원했다.
여기에 우리 몸은 둘뿐인데 셋이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두 명이 앉을 자리에 세 엉덩이가 끼어 앉아서 굉장히 불편한 기분. 전 여자친구의 취향이 왜 지금까지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건지, 그리고 그게 나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에 화가 났다. 나는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데 남친의 전여자친구가 좋아했던 음식이라 시킬 수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나는 그 사람과 사귈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 사람이 싫다고 하면 나도 싫어하는 척을 하며 내 감정을 참았다. 그러는 게 사랑인줄 알았다. 나를 학대하는 것인지 몰랐다. 그 사람 앞에 설수록 나라는 사람은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좋아하는 전시회 데이트를 1년 8개월의 교제동안 딱 한 번 다녀왔다. 그 사람은 주말에는 멀리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편하게 쉬고 싶어했다. 그 사람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맞추려니 서로 힘들었다. 그 사람은 야외로 나가는 것이 힘 빠지고, 나는 야외로 나가지 않아서 우울해졌다.
그 익선동 데이트 때 결국 나는 대꾸도 안 하고 당근 케이크를 시켰다. 나는 당근 케이크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가 당근 케이크를 시킨 이유를 모른다. 전 여자친구가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만 안다.
다행스러운건 그 카페 당근 케이크 맛이 참 좋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평생 모를 것이다. 본인이 싫다는데도 당근 케이크를 억지로 시킨 전 여자친구로 나를 기억하겠지. 참 웃기는 일이다.